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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01. 2021

<D.P.> 줌인과 줌아웃

12시가 되면은 혼나게 될 거야

넷플릭스 <D.P.>는 군무 이탈 체포조가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다. 대학 동기 녀석이 D.P.조로 군생활을 했었는데, 당시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잡기 쉬워. 탈영병들 거의 PC방에서 잡히거든." 친구의 말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D.P.>는 줌인과 줌아웃에 능하다. 드라마의 오프닝을 볼까. 한 아기가 등장한다. 보자기에 싸인 신생아다. 순식간에 돌잔치 장면으로 전환되더니 후드를 뒤집어쓴 유아의 모습이 나타난다. 조금 더 성장한 아이. 학예회에서 주인공으로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아이만을 비추던 카메라는 조금 줌아웃된다. 유니폼을 입은 채로 축구장 주변을 걷는 장면이다. 그러다 친구들 사이에 앉아 해맑게 웃는 스무살의 청년이 된다. 조금 더 줌아웃. 수많은 장병들이 입소하는 보충대 혹은 훈련소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제 그 아이는 수많은 장정들 사이의 구별되지 않는 '무엇'이 된다. 머리를 모두 빡빡 깎은 청년들 속 하나가 고개를 돌린다. 주인공 '안준호'다.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였다가, 무리 속의 '무엇'이었다가, 다시 구별되는 '안준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한 사람은 수많은 군인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과, 수많은 군인 중에 하나는 소중하고 유일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306보충대에 입소하던 2011년 10월의 어느날, 기간병 하나가 175cm가 넘는 장정들을 무작위로 차출해서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헌병 면접을 본다고. 우리는 헌병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줄지어서 면접을 봤다.


"여기서 나는 헌병 하기 싫다. 하는 사람?"

나는 손을 들었다.

"저 안하겠습니다."

"왜?"

"헌병 하면 오래 서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

"다른 거 하고 싶습니다."

"그래라."


나는 오래 서있기가 싫어서 헌병을 안하겠다고 했고, 담당관은 그러라고 했다. 오래 서있기가 싫어서 헌병을 하지 않은 나는, 돌고 돌다가 군생활 내내 바닷가에서 서있기만 하는 해안 GOP에 배치되었다.


처음으로 매복 파견 근무를 나가던 날이 기억난다. 오후 4시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해안가 초소에 도착해서,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 경계근무를 서는 임무였다. 나는 이등병이었고, 내 사수는 상병 아무개였다. 이른 저녁을 먹는 동안 선임들의 대화가 다 들렸다.

"너 부사수 서댐이냐?"

"어. 서댐이랑 무슨 얘기하지? 존나 재미없을 거 같애."

"그냥 12시부터 갈궈. 시간 잘 가게."

"쩝. 그래야지."


잘못 유무와 상관없이 12시에 혼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들어가는 근무는 어찌나 무서운지. 잔뜩 긴장했다. 그런데 선임이 의외로 착했다. 우리는 초소를 점령하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선임은 농담도 잘했고, 말발도 좋아서 이야기를 맛깔나게 했다. 나는 진심으로 웃겨서 깔깔 웃기도 했다. "서댐이 은근히 재밌네." 선임은 칭찬도 해주었다. 12시까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12시.


"야 몇시냐?"

"12시 입니다."


선임이 기지개를 폈다. 고개도 몇 번 꺾었다. 눈빛이 급격히 차가워졌고, 갑자기 이것저것 퀴즈처럼 물어보기 시작했다. K2 소총의 최대 사거리, 유효 사거리, 전술사거리, 탄 속도, 기능순환 8단계, MOPP 4단계, 진돗개 1호,2호,3호, 포네틱 코드, 분대 편제 등. 전입 오자마자 던져주었던 암기수첩의 거의 모든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외운 덕택으로 내가 대답을 잘 하자, 그게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번에는 총기 구석구석을 찌르며 부품 명칭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 노리쇠입니다. 이게 뭐냐? 장전손잡이 입니다. 이게 뭐냐? 가늠자입니다. 이게 뭐냐? 가스조절기 입니다. 이게 뭐냐? 개머리판입니다. 이게 뭐냐? 총열 덮개 입니다. 이게 뭐냐?


"..."


마침내 내가 대답을 못하자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선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아 이 새끼 존나 빠졌네."를 중얼거렸다. 12시부터 3시까지, 그 3시간은 나에게는 지옥이었고, 선임에게는 즐거운 놀이같은 시간이었다. 도무지 종결되지 않는 군대식 갈굼은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나는 대답을 난처해하면서, 죄송해하면서, 송구해하면서, 그 초소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한 부품이 '윗총몸아랫총몸분리못'이었는데, 그걸 몰라서 그렇게 혼났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았는데, 나오지도 않는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부품이거나, 선임이 잘못 알고있었던 것이다.) 한따까리가 끝나고, 나를 실컷 갈구던 선임은 마침내 곯아 떨어졌다. 나는 차라리 감사했다. 별이 총총한 하늘 밑.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찰랑거리는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D.P.>를 보면서, 군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속절없이 당하는 후임의 모습에도 감정이입이 됐고, 모질게 갈구는 선임의 모습에도 감정이입이 됐다. 그 두 모습이 모두 다 나였기 때문에, 나는 억울해만 하기에도, 부끄러워만 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했다. 나는 어리숙한 이병이었고, 똘똘한 일병이었고, 무서운 상병이었고, 느긋한 병장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혼나고, 또 누군가를 잔인하게 혼내고, 일을 왕창 몰아서 하다가, 또 일을 왕창 몰아서 시키는, 그런 사이클 속에 잠시 편입되었다가 전역했다.


그리고 슬펐다. 누군가는 유세라 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정말 힘들었다. 외로웠다. 괴로웠다. 그리고 드라마 속의 누군가도 그렇게 힘들어했다. 줌아웃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점차 줌인되면서,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드러냈고, 탈영병들에게는 모두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수많은 군인 중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자, 그가 하나의 소중하고 유일한 사람임이 드러났다.


이야기라는 것은 줌아웃에서 줌인으로 가고, 누군가의 사연을 세세하게 들추고, 하나의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D.P>는 이를 잘 보여준다. 6부작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안준호'를 따라가는 일이 힘겹고, 또 한편 즐거웠다. 나의 군생활을 돌이켜 보게 됐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반복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폭력을 상상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지긋이 응원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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