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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29. 2021

아빠가 택시를 그만둔 이유

우리 집만의 특별한 비극이랄 것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가정불화가 심했다. 어린 날부터, 부모님이 갈라설 때까지 20년 이상 집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매일 다툼이 벌어지다 보면 그게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괴롭고, 불안했다. 다툼이라는 것은 일종의 기본값이 되어 집에 아무런 갈등이 없는 순간마저도 DMZ의 고요처럼 느껴지곤 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었으므로, 자연히 어린 날의 나는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사랑’을.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 가정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다정하게 대화하거나, 서로 애정표현을 하거나 스킨십을 하는 법이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의 부모님은 사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입니다.”같은 말씀을 하시면, ‘우리 집은 아닌데?’하는 생각을 혼자서 조용히 했다. 이후의 나는 “결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농담처럼 내뱉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헷갈려 하면서 나는 그렇게 계속 자라났다.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처음에는 '이상한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당연한 것'으로 바뀌었다. 사랑하지 않는 부부들을 매스컴을 통해 보면, 그것이 처음에는 '안타까운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바뀌었다.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다정한 부부를 보면, 그것이 처음에는 '아름다운 일'이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놀랍고 신기한 일'로 바뀌었다. 사랑에 대해서도, 불화에 대해서도 덤덤한 쪽이 되었다.


2021년 봄, 올 초에 나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의 신혼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의 험담 비슷한 것이었다. 신혼 초 겪은 여러가지 일화들을 통해 어머니는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지, 섬세하지 못한 사람인지에 대해 토로했다. 나는 화자인 어머니를 통해서, 그녀의 난감함, 부끄러움, 힘듦, 아픔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지겹도록 들어온 레파토리의 반복이었다.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마무리되던 평소의 대화와는 달리, 그날은 아버지가 택시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불쑥 튀어나왔다.


“네 아빠가 택시 할 때는 그래도 수입이 안정적인 편이었지.”

술도 자주 안 마시고, 꾸준히 생활비를 주고,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일상이었다는 얘기. 곧이어 어린 형을 같이 돌보고, 쉬는 날이면 유원지에 놀러가고,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했다는 잔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무튼 생전 처음 듣는 단란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빠는 택시를 왜 그만 둔 거예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였다. 아빠가 어느 겨울 날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서울에서 인천가는 장거리 손님을 태웠다. 아빠는 신나서 인천으로 차를 몰았는데, 택시가 어느 국도변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것이었다. 2차선 도로의 오른쪽은 낭떠러지였고, 왼쪽은 반대 차선이었는데 다행히 반대차선으로 차가 두 바퀴 돌았고 마침 반대쪽에서도 차가 오지 않아 아무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아빠는 집에 돌아와 신이 나서 엄마에게 자랑하기를 ‘낭떠러지로 떨어졌거나 반대 차선에서 차라도 왔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돈도 되게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가 택시를 그만둔 이유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가슴이 철렁해서 “당신 그 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의 반응에 몹시 난처해 했지만, 아내의 입장이 너무도 완강한 탓에 택시를 접고 장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매일 돈, 돈 거리면서 싸우던 부모님에게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정말 우습지만, 나는 202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당연할 수 있는 신혼부부의 일화인데, 나에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놀라운 일처럼 들렸다. 지동설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나의 세계의 일부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그 시절의 이런저런 좋았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네 아빠랑 연애할 때보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가 더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조용한 방에 혼자 앉아서, 떠오르는 감정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두 분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고, 사랑의 감정이 있었고, 그것이 불운하게 뒤틀린 것이라는. 우리 가정의 불화가 '자연스러운 비극'이라는 안도감이었다. 학창시절에 들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랑의 결실'이라는 말을 이제야 자신있게 긍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움이라는 감정도 이어졌다. 이 이야기를 초등학생 때라든지, 적어도 중고등학생 때라도 들었다면, 내면의 방황이 조금 줄었을 텐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덜 의심하고, 부모님과 그들의 관계를 조금 더 존중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의 뒷맛이 썼다.


아버지가 인천까지 택시를 몰았다가 신이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장면이 그려졌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한껏 걱정하다가 안도했을 어머니의 표정도 어렴풋이 가늠해보았다. 벌어온 돈보다, 남편의 안위를 더 걱정했던 어머니. 자신의 안위보다, 집에 가져다 줄 넉넉한 돈이 더 기뻤던 아버지를 번갈아 떠올리면서. 그 낯섦에 조금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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