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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08. 2017

바다가 태양을 삼킬 때

- 마지막으로 일몰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

일출이 아름답다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 미천한 경험에 미루어보면, 단연 바다로 잠기는 일몰이 훨씬 아름답다.      


서울에 산다는 것은, 일출과 일몰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해가 어디서 언제 뜨는지, 언제 가라앉기 시작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지 알 수 없다. 물론 서울뿐만 아니라 내륙의 대도시에서 산다는 게 그렇다. 그래서인지 도시인들은 일출과 일몰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경향이 많은데, 나 역시 분단국가의 청년으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랬다.     


사실 일출이나 일몰은 독특한 사건이기는 하되 별로 소중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그건 매일 한 번씩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 년이면 일출과 일몰이 365번 일어나는 셈이니, 별 대단한 이벤트라 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핼리혜성은 칠십 몇 년 주기로 지구를 스쳐가고, 몇 백년을 주기로 하는 일식이라든가 월식같은 우주적 이벤트에 비하면, 태양의 뜨고 지는 행위는 꽤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걸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어찌어찌 김포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보직이 서해안의 외로운 초소에서 바다를 쳐다보는 일이란 걸 알았다. 무척 외롭고. 조용하고. 피곤한 일이었다. 고단하지 않은 군생활이 어디 있으랴. 고통의 총량을 수치화 한다면 군부대 이곳 저곳에 나보다 힘든 일도 얼마든지 많았을 테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그냥 힘들었다.     


좋아하는 일도 매일 하면 질릴진대, 서해안 GOP 조그만 소초에서 매일같이 야간근무를 서는 일은 대체로 끔찍하다고 느낄 정도로 나에게 무척 부담스러웠다. 해가 질 무렵부터 해가  무렵까지의 긴 밤을 GOP 근무는 반으로 뚝 잘라서 교대근무한다. 그래서 앞 순서의 야간 근무자는 해가 질 무렵 근무할 초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나는 길고 긴 해안선을 따라 삼 십분쯤 걸어가야 했다.     


등에는 탄약이나 신호탄, 각종 장비들을 조끼로 매고. 그렇게 근무지로 걸어가다 보면, 하늘의 태양은 강렬함을 조금 잃어버린 주황빛을 내며 꽤나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 쳤다. 하늘도 붉은 빛으로 물들고, 구름은 수많은 태양빛을 산란하고, 태양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바다도 그 색을 받아들였다.      


그 장엄함이란, 울컥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온 세상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낙조 때의 구름은 예수의 재림과 어울렸다. 그 장면은 결코 질리지 않았다. 매번 같지만, 매번 새로운 것은 내가 알기로 일몰 풍경밖에 없었다.      


원시부터 꽤나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왜 세계 곳곳의 민족이 태양을 신으로 모셨는지, 일출과 일몰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존재만으로 온누리를 밝히고 어둡게하는 태양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어서 절로 경외로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21세기의 하늘에 수 천대의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첨단과학의 와중에도, 인간은 어두운 밤을 완전히 밝힐 재간이 없다.      


그 당시의 나는 일몰을 보면서 가끔 인간적인 범주의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이라든가, 넓고 깊은 바다라든가, 뜨고 지는 태양을 보면 인간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것이 너무나 하찮게만 느껴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인간이 발 딛고 선 우주의 스케일에서 볼 때 너무나 유효했다. 수 십 광년 떨어진 별들을 볼 때에는 백 년을 살지 못하는 나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힘들었다.     


벌써 서해를 떠난지도 햇수로 4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일몰과 일출에서부터 완전히 멀어진 삶을 지속하고 있다. 자연스레 일몰과 일출에서 멀어졌고, 관심에서도 벗어났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끔 흠칫하고 놀라고 마는 건, 수십 광년의 별과 알 수 없는 깊이의 바다를 기준으로 일어났던 나의 생각들이 점점 좁아져서, 내년도 아닌 당장의 내일, 몇 푼의 돈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는 점이었다.

늦은 밤. 맥주를 한 캔 따서 목으로 넘기면서 나는 서해안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그에 비하면 지금 이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순간인가. 기뻐하면서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잊고 있던 그 장엄한 일몰의 풍경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고 부끄러워졌다.      


이어지는 약간의 그리움. 남은 맥주를 목에 마저 털어넣으면서


조만간 일몰을 보러 갈 테다. 그런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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