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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06. 2017

배고픈 저녁

- 꼬르륵 소리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가끔 배고픈 느낌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배고픔이란 건 뭘까. 평소 같으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냉장고를 뒤적거리거나, 라면 봉지를 뜯고 냄비에 물을 올려놓았을 테지만 이 밑도끝도 없는 뱃속의 시위에 관심이 갔다.

때로는 배고픔을 느낄 때 내 자신이 정말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결국 뭘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욕구의 노예가 된 기분이랄까. 지극히 말초적인 욕구가 사실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허탈하다.


배고픔이 지속되면, 일도 할 수 없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도 없다.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배가 고플 때는 잠도 안 온다.


하지만 우습게도 음식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다가 목에 넘겨만 주면, 나는 다시 교양 넘치고, 잘난 체 할 수 있는 사회의 지성인으로써 죽음과 사랑에 대해 고뇌할 수 있게 된다.   

   

오늘같이 배고픈 저녁에 늦은 밥을 먹기 앞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그런 하찮은 나에 대한 일종의 저항인 셈인데,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결국 한 입 먹지 않고, 한 숨 자지 않으면. 제때 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순한 생명체. 내가 그렇구나.      


라면 물을 올려야겠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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