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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29. 2021

왕따 순번제

흐릿한 어린날의 기억, 나도 가해자였나?

얼마 전 대학교 후배들이랑 술을 먹는데, 어쩌다보니 어릴 때 상처받은 얘기들도 하게 됐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얼마나 못됐는지. 또 유치했는지 새삼스럽게 곱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어이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대화였는데, 이야기의 막바지에 후배 한 명이 하는 말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어이가 없는 종류였다.


“오빠, 어릴 때 저희 동네는 왕따를 돌아가면서 시키고 그랬거든요? 저도 그때 한번 왕따 차례여서 왕따를 당했는데…”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왕따 당할 차례가 돼서 왕따를 당했다니. 나는 후배가 당했다는 왕따 얘기를 쭉 듣고 나서,  “야 무슨 그런 게 다 있어 진짜 웃긴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 덜컹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는데 정말 안개가 걷히듯 내 머릿속 저 아주 먼 구석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같은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아. 맞아. 우리도 그랬었어.’ 뒤늦게 중얼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2003년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날따라 분위기가 묘했다. 애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걸어도 반응이 신통치 않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분명하게 들었다. 전날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이유를 알 리가 만무했다.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소외된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이었다. 


일단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애들이 은근히 자리를 피했고, 내 주위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헐겁게 배제되었다. 작정하고 욕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낼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슬금슬금 멀어진달까. 어린 날의 나는 자연스럽게 위축되었을 뿐,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그동안은 누구에게 말을 걸지도 않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타지에 내버려진 기분이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런 고립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기억이 흐릿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짧다면 몇 시간, 길다면 며칠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내게 남은 기억은 두 토막이다. 첫번째는 앞서 설명한 왕따 직후의 상황, 두번째가 전말을 알아챈 순간이다. 내가 섣불리 무리에 끼지 못하고 방황하자,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조금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 그 친구에게 접근했다. 키 크고 눈이 땡그랗던, 마른 여자아이였다. 


“오늘 나한테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묻자 그 친구는 조금 고민하더니 조용하게 대답했다.

“이번에 너가 왕따 당할 차례래.”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막막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그냥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침울해졌을 뿐이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왕따령은 유야무야 해제되었고, 나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왕따 경험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인지, 그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동아리 후배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 기억은 아주 짧게 조각난 채로 남았으므로, 그 이전의 상황, 그 이후의 상황을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조금 궁금해진다. 내가 왕따순번제에 의해 짧은 시간 배제되었다면, 그 이전과 이후에 나도 그 은밀하고 잔인한 왕따행위에 가담하지 않았을리가 없을텐데 왜 나에게 그러한 기억은 없을까? 나는 내 몫의 왕따를 겪고도, 바톤 터치된 다음 사람에게 안심하고 똑같은 폭력을 가했을까? 내가 그렇게 나쁜 아이였나? 떠오르지 않는 기억 앞에서 답답할 따름이다.


이렇게 모호한 기억 앞에서 나는 뒤늦게 반성을 해야 하는지, 적극적인 용서나 화해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지, 그저 내가 당한 고통을 안쓰러워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 어렵고 헷갈리는 기억을 씁쓸한 마음으로 기록해두는 것 뿐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검색해보니, 비슷한 시기에 등록된 질문들이 많았다. 우리 동네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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