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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04. 2021

너무 많은 싸움

숨쉴 틈도 없이 싸우는 게 기본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참 끝도 없이 싸운다. 뉴스라는 것도 가만보면 절반 이상이 싸움 얘기다. 야당과 여당이 싸우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싸우고, 중국과 미국이 싸우고, 남한과 북한이 싸우고, 공권력과 소시민이 싸우고, 기업과 노조가 싸우고, 연예인이 팬들과 싸우고, 옛 연인들이 싸우고, 이쯤 되면 싸움이라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싸우면 안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게 계속 싸우라는 말보다 어색하게 들린다. 


싸움을 악으로 규정하는 문화인들이 사랑하는 모든 이야기도 싸움 얘기다. 어벤져스도 싸우고, 삼국지도 싸우고, 겨울왕국에서도 싸운다. 남녀가 홀딱 벗고 섹스하는 영화는 오직 사랑만이 가득해도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전체 관람가의 액션영화에서도, 애들 보는 로봇만화에서도, 주인공들은 정의로운 폭력을 쉽게도 행사한다. 악당들에게는 인권도 없는지 개미보다 쉽게 죽임 당한다.


도로에서도 싸운다. 끼어든다고 싸우고, 안 끼워준다고 싸우고, 교통법규를 너무 잘 지켜도 융통성 없다고 싸우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고 싸운다. 유튜브 댓글창에서도 싸운다. 시장통에서도 싸우고, 직장에서도 싸운다. 화해는 요원하고 문학적인 이벤트다.


나도 싸운다. 친구와도 싸우고,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하다가도 싸우고, 게임하다가도 싸운다. 소환사의 협곡에서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익명의 누군가와 욕하면서 싸우다가 계정이 정지되기도 한다. 


먹는걸 좋아하는 개체들만 번식을 지속하니 대부분의 인간들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섹스 좋아하는 개체만 번식을 지속하니 대부분의 인간들이 섹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싸워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번식을 지속하니 다들 태어날 때부터 싸우는 데 도가 텄다. 본능이나 유전자를 생각하면 조금 징그럽다.


모든 인간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 아득히 낮은 곳으로 한달 동안 추락한다면, 그 한 달 동안에도 사람들은 싸움을 하겠지. 끔찍한 충돌을 코앞에 두고서도 바로 옆의 누군가와 아웅다웅 하겠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가는 모든 인간이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쓸데없는 공상을 한다.


오늘은 문득, 너무 많은 싸움에 노출된 것 같아서 숨이 턱턱 막혔다. 하루 동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무차별적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뉴스가 그랬고, 인터넷의 여러 공간이 그랬고, 도로가 그러했고, 길거리가 그랬고, 도피하듯 숨은 영화에서도, 그러고보니 온통 싸움뿐이어서. 머리가 아주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숨쉴 틈도 없이 싸우는 게 기본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지나치게 평화롭다고. 싸움의 공백이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거냐고 중얼거린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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