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Nov 12. 2021

가끔은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저는 고기를 먹을 겁니다. 제 꿈은 채식주의자 입니다.

살면서 단 하루도 비건의 삶을 온전히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나도, 가끔은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매년 500억마리의 동물들이 인간을 위해 살해당한다는 자료를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 똘똘 뭉쳐 70억을 겨우 넘겼다는데, 매년 500억 마리의 동물이 사람에게 먹힌다고 하면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kg의 소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15,00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탄소는 거의 30kg이 배출된다는데, 자동차를 타고 100km를 달리는 양이라고 한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소고기가 270kg이 나온다고 하니, 소 한 마리는 얼마나 많은 물을 고, 탄소를 배출하는가. 오로지 먹히기 위해서 자원을 소비하다가 맥없이 죽임 당하는 그의 생은 어찌 그리 허망한가를 잠시 생각한다.


천진난만한 송아지, 망아지, 새끼 돼지와 양을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무슨 연유로 그토록 귀여운 것인지. 익숙한 성체의 모습도 그렇지만,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돌아다니는 새끼 동물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다. 저 귀여운 아이들이 ‘식용’이라니, 솔직히 소름이 돋는다. 근친교배로 유전병을 운명처럼 달고 살며, 중성화 수술되어 목줄에 끌려 다니는 강아지도 가끔씩 불쌍하지만, 부모도 모른 채 사육되는 ‘가축’들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동물들이 도축되는 모습을 보면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돼지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고,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뜨리고, 갈고리에 걸어서 배를 죽 찢고, 내장을 털어버리고, 차근차근 분해하는 모습을 보면 아찔하다. 닭들이 빨랫감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움직이다 자동으로 머리가 퉁퉁퉁퉁 잘리는 모습을 보면 속이 메슥거린다. 알을 낳지 못해서 별 쓰임새가 없는 수컷 병아리가 믹서기에 휘잉-하며 갈리는 모습을 보면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도축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소의 안간힘을 보면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고기를 먹다가 혀를 씹을 때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채소를 먹을 때는 그런 일이 없는데, 고기를 먹을 때는 종종 혀를 씹는다. 입안에 혀 비슷한 것을 넣고 씹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혀인지 고기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는 것이다. 비릿한 피 맛 을 느끼면서, 동시에 쓰라린 혀 표면의 고통을 느끼다 보면 고기가 내 혀같이 아프게 느껴지고, 혀가 고기처럼 질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는 나를 생각하면 조금 민망해진다. 고기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한 미션임을 생각한다. 스테이크를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삼겹살을, 초밥을, 치킨 피자를, 해물파전을, 마라탕을, 짜장면과 짬뽕을,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를, 이것을, 저것을, 저것을, 이것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생 채식이라는 게 가능키는 한가, 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하며 고기를 피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임을 알리고, 혼자 도시락을 챙겨 다니며 살 수 있을까, 가끔씩 나도 모르게 고기 들어간 음식을 걸러내지 못하고 먹다가 소고기를 먹은 힌두교인처럼 화들짝 놀라 좌절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될 수 없는 수 백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영하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반대로, 채식주의자가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보다, 될 수 없는 수 백 가지의 이유가 커다랗다. 동물을 너무 측은해 할 수 있는 내가 고기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건 일종의 어떤 저주처럼 느껴진다. 탄소중립이니, 동물권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떠들고 있을 때. 내 귀에 앙금처럼 가라앉는 진실과 앎은 참 무겁기만 하다.


인간의 탐욕을 부끄러워하고. 동물들에 측은함을 느끼면서 점심으로 양평해장국을 먹는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삶은 계속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나더 레코드> 신세경과 김종관과 서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