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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24. 2021

<비욘더로드> 오감을 동원하기

더 현대 서울, 비욘더로드, 플롯레터

문화,예술,교양 관련 소식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달해주는 뉴스레터 ‘플롯레터’ 이벤트를 통해 초대권을 제공받고 관람하였습니다.


김영하는 <우리 모두 기쁨을 아는 몸이 되자>는 이름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관에 가면 조각이 있잖아요?
저는 조각을 꼭 만져봐요.
거기에 “만지지 마시오”라고 써 있죠?
그래도 경비원이 없을 때 꼭 만져봐요.
(중략)
저는 지금도 로댕의 조각을 생각하면, 시각 뿐만 아니라 직접 만져봤던 촉각으로 기억이 됩니다.
(중략)
모든 감각은 쓰면 쓸수록 풍부해집니다.


김영하라는 작가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조각을 꼭 만져보라’는 조언은 강연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나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감을 최대한으로 동원해보라는 자신의 의도를.


나도 이에 동의한다. 글을 쓸 때 여러 감각을 묘사할수록 더 생생해지는 것을 느낀다. 여행을 가서도 오감을 총동원해서 감각할 때 경험은 더 풍부해졌다. 기억은 더 오래 남았다.


<비욘더로드>는 김영하 식으로 감각하며 감상하기에 참 좋은 전시다. 모든 작품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공간지각을 고려하여 전시되었다. 작품 설명 텍스트나 동선도 없다. 관객은 입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체험하면 된다.

음악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초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이머시브 전시입니다.


홍보문구에 적힌 문장은 과장이 아니다. 거의 모든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99개의 스피커가 공간전체를 음악으로 감싸고 있었다. 초현실적인 분위기. 거기에서 나는 음악 속에 입체적으로 놓인 듯한 기분을 받았다.


영화와 소설 중에 더 생생한 쪽은 무엇일까? 가끔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보다는 소설이 생생하다. 소설은 그 세계 속에 잘 몰입하기만 하면, 오감이 온몸으로 구현되지만, 영화는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결국 시각과 청각의 예술이니까. 빛과 소리의 강렬한 자극 앞에서 우리는 끝내 촉각, 후각, 미각에 닿을랑말랑하다 멀어진다.


그렇다면 소설보다 생생한 것은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현실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나는 잠깐씩 소설의 세계에 빠졌다가, 영화의 세계에 빠졌다가, 인터넷의 가상 공간에 빠졌다가 하지만 결국은 현실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체험하는 게 좋다. 테마파크에 가면 어릴 때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퍼레이드를 빠짐없이 챙기고, 여행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만지고 맛보려고 한다. 되도록 많은 자극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한다. 늘 멀찍이서 지켜만 보던 어린시절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스물 세 살 때였나, 여자친구와 건대에 있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다. 잠수함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서 밥을 먹는다는 컨셉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깜깜하니 내 입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는 내 입술을 만지며 입의 위치를 찾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음식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나머지는 모두 휘발되었지만, 한 시간의 저녁식사 시간만큼은 좀처럼 잊히지가 않는다. 오감을 동원한 체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비욘더로드>에서 1시간 30분 동안 있었다. 내부의 크기가 엄청나게 큰 편이 아니었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낸 것이다. 동선이 따로 없고, 꺾어지는 통로나 갈림길이 많아서 공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반복되는 영상물을 여러 번 보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거나 이것저것 만져보고, 향수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순환되는 길을 여러 번 반복해서 걸었다.


초대권을 제공받고 쓰는 글이라 어느 정도 홍보의 책임감도 느끼지만, 나는 별로인 것을 대단하다고 말하거나 싫은 것을 좋다고 쓰지는 않는다.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되는 분들은 관람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잘 느끼는 건 왜 중요할까요?
안 느끼면 되잖아요.
바쁜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 느끼는 사람은 남의 의견에 잘 휘둘리지 않아요.
자기 느낌이 있잖아요.
김영하, 2013년, 청춘페스티벌 강연, <우리 모두 기쁨을 아는 몸이 되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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