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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16. 2021

조립은 분해의 역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사랑은 시간을 잊게 만들고, 시간은 사랑을 잊게 만든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이 격언을 자주 인용하게 된다. 현실적인 영역에서 이보다 정확하게 통용되는 말은 드문 것 같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데이트 하던 남녀가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가는 모습은 내가 겪어도, 멀찍이서 바라보아도 모두 씁쓸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제목 속에서 나타나는 ‘했다’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연인의 사랑과 이별을 다루고 있다. 맞다. 오래 전부터 숱한 작품들을 통해 수없이 변주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을 다룬 훌륭한 영화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 작품 또한 사랑과 이별의 장대한 일대기를 다루면서 보편성과 고유성이라는 두 측면을 두루 만족시킨다. 엄청나게 몰입해서 감상했다. 모든 면에서 걸출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키누'와 '무기'가, 여러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불화하고, 끝내 이별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연애 초반에 온갖 공통점들을 찾아내며 운명을 강화해 나가지만, 이후에는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이별을 정당화한다. 말하자면, 유일했던 연애가 너도나도 한번 쯤 겪어본 흔한 연애담으로 변질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한다. 초반부, 그들이 서로의 닮은 점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면 딱 맞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보여서 도저히 이별이라는 단어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그들이 서로에게 실망할 수 있다니,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취향과 가치관을 일부러 분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취향의 사람도 결국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 취향은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는 할 수 있어도 유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영화의 논조가 무척 흥미로웠다.


무기가 꿈을 포기하고 회사원이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키누와 발코니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둘의 차이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장면같다. 무기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목표는 ‘키누와의 현상 유지’야”


이 말이 끝나고, 둘은 바짝 붙으며 활짝 웃는다. ‘현상 유지’라는 소박한 목표가 키누와 무기 모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상 유지’의 해석은 서로 달랐다.


키누에게 ‘현상 유지’란 감정의 유지를 뜻한다. 키누는 감정을 의심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이별을 염두하고 있다. 그녀가 한때 마음을 빼앗긴 블로그 ‘연애생존률’의 작가가 그러했듯이 미래에도 지금의 사랑이 변함없이 유지될 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가 커플타투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녀에게 감정은 언제든지 변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누는 무기의 ‘현상 유지’라는 말이 반갑다. 사랑이 오래오래 변치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는 말이니까. 그녀가 좋아했던, 죽어서도 오래오래 변치 않는 미라처럼.


무기에게 ‘현상 유지’란 관계의 유지를 뜻한다. 이 관계는 감정과 달리 상당부분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하기 위해서도, 함께 동거하기 위해서도, 영화를 보거나 빵을 사먹는 데이트를 위해서도 모두 비용이 청구된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적 무능으로 인한 관계의 파탄이다. 돈이 없다면 선택권을 잃게 되고, 그녀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무기는 키누와 달리 이별을 상상하지 않는다. 서로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단순하다 싶을 정도로 확신한다.


키누에게 현상유지 조건은 감정이지만, 무기에게는 경제력이다. 그러니 키누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아야한다는 유혹과 싸우고, 무기는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싸운다. 누가 옳았는가? 사실은 둘다 조금씩 틀렸다. 무기가 돈을 벌기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무너졌을 것이다. 키누가 열심히 돈을 버는 데에만 매진 했어도, 둘의 사랑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전개는 예견된 것이었다. 키누와 무기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무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를 ‘쇠지렛대(빠루)와 같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쇠지렛대는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만드는 도구다. 잠긴 문도 억지로 뜯거나 열 수 있는 도구. 단순한 형태로 예상 못한 큰 힘을 낼 수 있는 도구. 무기는 애초에 꿈이 크고 야망이 있는 사람이다.


싫어하는 말로는 ‘우노 할 때 우노 안 외쳤으니까 두 장 가져가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답한다. 보드게임 ‘우노’는 원카드처럼 진행하다가, 한 장이 남았을 때 ‘우노!’를 외치고 이를 못 외쳤을 때는 카드 두 장을 가져가야하는 게임이다. 그러고보면 무기의 말은 이상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데, ‘너 움직였으니까 걸렸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기는 설령 벌칙을 받아야하는 순간에도,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인 것이다.


피터팬처럼 낭만적이었던 무기는 이러한 잠재된 특성 때문에 네버랜드를 지키기 위해 어른이 되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힘으로는 네버랜드를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른이 되어 후크를 물리치고 네버랜드를 경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키누는 어떨까. 키누는 이야기 속에 사는 사람이다.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교차시키고 동일시한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사실은 환상적인 현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분쟁이나 갈등도 병적으로 싫어한다. 무기의 방에 처음 놀러갔던 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며 가족들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커튼을 치고, 환상적이었던 지난 밤을 음미한다. 그녀는 무기와의 연애마저 본인들이 주인공인, 어떤 아름다운 소설처럼 이해한다.


키누는 무기와 막차를 놓친 날, 가라오케다운 가라오케에 가고 싶다며 무기를 노래방으로 이끈다. 그녀가 처음 들렀던 가라오케는 가라오케인 척 하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공간이었고, 그녀는 그 곳을 싫어했다. 키누는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싫다. 그래서 집 밖의 삶(일)과 집 안의 삶(생활)이 달라질 때 견디지 못한다. 그녀가 자신의 생활과 너무도 다른 성격의 회계 일을 때려치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환상적인 일상과 일맥상통하는 이벤트 회사를 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하고 만다. 꽃다발 같은 사랑은 처음에는 푸짐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해석되지만, 나중에는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들고 마는 아름다움으로 해석된다.


새드엔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별은 성공사례에 가깝다. 군대에서는 총기의 분해조립을 설명하면서, ‘조립은 분해의 역순’, ‘분해는 조립의 역순’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게 했다. 조립하는 순서가 분해하는 순서와 정확히 반대라는 설명은 얼핏 당연해보인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순서대로 조립되는 사랑은 있어도, 순서대로 분해되는 사랑은 흔치 않다. 키누와 무기는 순서대로 조립되었다가, 헤어짐을 선언하고, 유예기간을 거치며 매우 건강하고 건전하게 이별한다. 가구와 책, 고양이를 나누는 그들의 이사 장면을 보면 조립의 역순으로 분해되는 연애처럼 보인다.


그들이 겪은 모든 일들과, 이별의 전말을 따라가면, 우리는 첫 장면에서 왜 키누와 무기가 현재의 연인에게 노래를 들을 때는 꼭 양쪽의 이어폰으로 각자 들어야한다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어폰의 한쪽이 여자의 입장이라면 나머지 한쪽은 남자의 입장이다. 연애는 언제나 둘의 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지 않다. 그리고 각자의 관점과 감정이 중간에서 모여 믹싱되는 소리가 사랑의 완전체다. 한쪽만 들어서는 완전히 다른 노래(사랑)가 된다. 키누는 이별 후에 무기의 입장을, 무기는 키누의 입장을 헤아려보았으므로, 그들은 안다. 사랑은 마치 한 곡의 음악처럼, 서로 다른 소리의 조화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반쪽자리 입장으로 음악을 듣는 커플을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키누와 무기는 처음 그들이 만났던 것처럼 '우연히' 재회한다. 하지만 이제 그 우연은 운명의 증거가 아니라, 해프닝에 불과하다. 서로 인사 한마디 없이 각자의 길을 간다. 그들은 이제 서로 다른 연인을 만나지만, 여전히 닮아있다.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어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각 각자의 방에서 음식을 먹으며 기분 좋게 상대방을 회상하기도 한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꽃다발에 마지막 세번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꽃다발은 시들지만 마음 속의 꽃다발은 시들지 않으며, 언제나 싱싱하고 아름다운 그때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 꽃다발을 받았을 때의 기쁜 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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