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건, 나쁜남자와 연애하려는 심리와 비슷한 것 같다.
이른바 ‘나쁜남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골라 만나는 여자들은 보통 일관된 특성을 보인다. 일단 상대에게 상처 받으리라는 것을 막연히 알면서도 그 강렬한 끌림을 이기지 못한다.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만남을 시작한다. 연애가 시작되면 압도적인 매력에 휘둘리다가 종국엔 마음을 다치고 만다. 다시는 나쁜남자 만나지 않겠다고 하지만, 또 막상 순둥하고 자상하기만 한 사람을 만나면 흥미를 쉽게 잃어버린다.
추리소설 보는 사람도 비슷하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지적호기심으로 추리소설에 이끌린다. 범인을 맞출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야기에 몰입한다. 막상 소설이 전개되면 정보를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범인은 예측불가능한 ‘누군가’이고, 나보다 영리한 탐정은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한다. 분하다. 그렇다고 순둥하고 시시한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내가 범인을 너무 쉽게 맞춰버리면 또 그것대로 섭섭하다. 그런 소설은 수준 미달로 여겨져서, 다시는 그 작가의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아진다.
추리소설 독자의 태도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스스로가 탐정보다 영리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탐정에게 패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대체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문 추리소설 작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나일 강의 죽음>은 역대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평가받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작이라 볼 수 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다시 메가폰을 잡고, 주연까지 맡았다. 출연진들이 굉장히 화려한데, <원더 우먼>의 갤 가돗이 ‘리넷’역으로 분하고, <블랙팬서>의 레티티아 라이트,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에마 매키도 출연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니 콜린스>의 아네트 버닝의 출연은 특히 반갑다.
스토리는 원작과 거의 같다. ‘나일강으로 항해하는 초호화 크루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유능한 탐정이 승객들을 심문하며 범인을 밝혀낸다’는 일종의 밀실살인사건이다.
결말과 반전이 모두 공개된 작품에서 어떻게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세계에서 4대 밖에 없다는 65mm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크루즈 세트에 잔뜩 힘을 준 배경에는, 설령 반전과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일지라도 압도적인 비주얼로 나름의 만족감을 채워주겠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성룡의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작품이 뻔하고 전형적인 결말을 참신한 해석과 성룡의 재기발랄한 액션으로 완벽하게 커버한 것처럼.
콘텐츠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수십년 전의 작품이 이렇게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은 놀랍다. 이야기의 본질이라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호메로스가 2800년 전에 이미 대단히 ‘현대적’인 작품을 쓰고 있었다고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대의 작가들이 쓰고 있는 작품들이, 소설이든 영화든 TV 드라마든 간에, 고대적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이야기 방식에서 그렇게 멀리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지 몇 백 년이 지난 후 쓰인 다른 작품을 보면 이런 심증이 좀 더 굳어집니다.” - 김영하의 <읽다> 중에서
좋은 이야기의 원칙은 변하지 않으며, 좋은 작품의 감동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말에 나는 깊이 동의한다.
생전 애거서 크리스티가 가장 아끼던 소설이라는 <나일 강의 죽음>이 2022년에 다시금 만들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그녀가 젊은 시절 겪은 삼각관계의 아픈 경험이 녹아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소설로 녹여내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을 읽고 나면, 범인을 찾아냈다는 통쾌함보다, 어떤 묵직한 감동이 가슴을 더 흔든다. 좋은 추리소설은 범인찾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과정에서 각자 나름의 인생관을 되짚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나는 대학시절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명탐정 ‘포와로’의 냉철한 논리와 추리력만큼이나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마음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나일 강의 죽음>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휴머니즘이 나를 찾아올 지 기대해본다.
코로나가 안정되는가 싶더니 다시 극성이다. 북적북적한 영화관에서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이루며 영화 보는 즐거움을 느껴본 지가 오래된 것 같다. 살펴보니 <나일강의 죽음>을 포함하여 2022년 개봉예정인 좋은 영화들이 줄지어 있던데, 부디 이 시기가 빠르게 수습되었으면 좋겠다.
*해당 포스팅은 디즈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