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을 갓 꺾었을 때, 사람들은 죽음의 5단계와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 처음엔 그럴리가 없다고 부정하다가, 분노에 휩싸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이길 수도 있었다고 협상하다가, 침울해하고, 결국에는 수용했다. 이제 AI를 바둑으로 이길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나 벌어진 격차에, 이제는 별달리 서글퍼 하지도 않는다.
“파일럿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에, 매버릭은 ‘아직(오늘은 아니다)’이라고 말하는 남자다. 매버릭은 부정하지도 않고, 분노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파일럿이 인공지능보다 나을 수 있다고 협상하거나, 침울해하지도 않는다. 인공지능이 파일럿을 대체하게 될 거라고. 동의한다고. 그는 흔쾌히 수용한다. 그가 힘주어 내뱉는 단어는 ‘아직’이다.
<탑건:매버릭>은 우리가 모조리 대체되기까지 남은 ‘아직’이라는 마법 같은 시간을 귀하게 사용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동안 인간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인지 이번 탑건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들은 인공지능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행동한다. 되돌아보면 이 영화는 비효율적인 선택과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촘촘히 엮여있다.
마하 10에서 만족하지 않고 속도를 내다가 신형 전투기를 박살내는 것부터가 영화의 시작이다. 추후 침투 폭격 작전에서 매버릭은 루스터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루스터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매버릭을 구하러 간다. 둘은 적진의 비행기를 탈취한다는 비상식적인 선택을 하고, 파괴된 활주로에서 이륙을 시도한다. 구형 전투기로 5세대 전투기와 승산 없는 도그 파이트를 벌인다. 매버릭은 전투 외적으로 수없이 실패를 거듭한 페니와의 관계를 새로이 시작하기도 한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인공지능에서 기를 쓰고 제거하고자 하는 비효율과 비합리, 비상식 같은 것들에 있다. 개선해야할 단점들이 우리를 되레 인간 답게 만든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효율이나 합리성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감정은 날씨와 같은 것. 너무나 압도적이지만, 김빠지게 일시적이기도 하다. 그 날씨의 집합과 경향을 우리가 기후라고 부르는 것처럼. 감정의 연대기를 우리는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의 삶은 빼곡한 감정의 ‘상승과 하강의 직조물(ㅎㅎ)’이다. 우리는 매버릭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인간의 우월함, 완벽함이 아니라, 뜨거움 그 자체. 이 영화의 가치는 매버릭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이 그 뜨거움으로 나름의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탑건 속편에 쏟아지는 찬사와 흥행이 뜨겁다. 인간에게는 일정한 리듬의 심장박동이 있고, 인공지능이 그것을 흉내는 낼 지 몰라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 <탑건:매버릭>을 감상하는 우리에게일종의 자부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