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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17. 2022

솔직함에 대해 생각하다

솔직함과 거짓말의 황금비율

요즘은 솔직함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솔직함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누군가에게는 별로 중요한 주제도 아닐, 이 '솔직함'에 대해 내가 집착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태생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잘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불리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거짓말 하나로 무마할 수 있는 갈등들은 얼마나 많은가. 거짓말을 하면 내 행동의 이유를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거짓말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나를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특이한 생각과 행동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솔직하면 꼭 피곤한 일이 생긴다거나, 소통에서 문제가 생기곤 했다. 거짓말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솔직하지 못한 편이었으니, 솔직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운동을 잘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를 처음 느꼈다. 나에게는 운동을 잘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러운 재능이었는데, 친구에게는 그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그 친구는 노래를 잘하고 싶어했다. "나는 운동을 잘하는게 좋아" 라고 말하지 않고, "네가 노래를 잘하는게 부러워" 라고 했다. 나는 "내가 노래를 잘해서 좋아" 라고 말하지 않고, "네가 운동을 잘하는게 부러워" 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보통 자신이 가진 재능은 조금 당연하고 하찮아보이고, 남이 갖고 있는 능력은 희귀하고 대단해보이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솔직함은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기에 늘 동경했다.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했다. 아싸가 인싸인 척 하는게 어딘가 어색하듯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솔직하려 했을 때 부작용도 많이 생겼다. 전역 이후 누구를 대하든 무조건 솔직하자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솔직함이 쿨함으로 보여지기도 했지만, 필터없이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100%의 솔직함은 90%, 80%로 계속 줄었다.


지금은 솔직함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완전히 솔직하자'던 마음은 '되도록 솔직하자'에서 지금은 '적당히 솔직하자'는 식으로 바뀌었다. 글에서만큼은 완전히 솔직하자던 마음은 '글에서도 완전히 솔직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차츰 변해가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솔직함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 것 같을 때는 고민이 많아진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을 했다. 솔직함이 명료하고 확실한 미덕이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지 않을까? 왜 세상에는 거짓말이 넘쳐날까?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터였다. 생각해보니 나부터도 솔직함만큼 빈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에둘러서 하는 말에 나는 따뜻함과 안전함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철든 사람들과 따뜻하게 빈말을 주고받는 것을 솔직한 소통만큼이나 다행스럽게 느끼면서 살아왔다.


'솔직한 마음은 때때로 부담스럽다.' '솔직한 마음은 때때로 아프다.' 이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가공되지 않은 진심이 말로 툭 내뱉어질때, 그 언어와 감정은 주전자에서 갓 따른 뜨거운 물처럼 입에 넣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 될 때가 많았다.


용기있고 당당한 그 솔직함만이 성숙한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성숙이었다. 세상에 빈말이 가득한 이유였다. 성숙하고 철든 사람들이 열심히 빈말로 세상을 둥글게 만들다보니, 나에게는 그 잠깐의 각진 솔직함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세상에 솔직함만 가득했다면, 나는 열심히 빈말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솔직함도 거짓말도 아니었다. 내 마음을 지키면서, 상대방의 마음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매사 솔직하지 못해서 나 자신이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도 나쁜 일이지만, 매사 기분대로 솔직하기만 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하지도 않아야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케바케', '중용'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이거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알잘깔딱센(알아서,잘,깔끔하게,딱,센스있게)으로 매사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나의 감정을 보살피고, 상대방의 감정을 보살피는 일이 이리도 어려우니, 환갑이 넘은 우리 아버지도 인간관계를 여전히 어려워하시는 것이겠지. 죽을 때까지 솔직함과 거짓말의 황금비율을 찾기위해 노력해야겠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민하다보면 늘 이렇게 머리가 아프다. 막막한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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