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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10. 2022

아름다운 순간을 음미하기에는

강가에 핀 꽃, 떠내려가는 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강물에 발을 담그는 동안에도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므로, 나머지 발을 담그고 나면 그 물은 처음 발을 담근 물과는 이미 다른 강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물 이야기를 통해 만물의 성질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다보면, 지금 내가 인생의 어떤 아름다운 순간 속에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짙은 주황빛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쳐다보고 있을 때, 늦은 밤 맥주를 목으로 넘기면서 기가 막히게 훌륭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감상할 때, 연인과 낭만적인 섹스를 할 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주말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을 팔로 막고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잘 때, 오마카세 초밥을 하나하나 받아 먹을 때,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하나의 주제로 유쾌하게 떠들 때,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볼 때.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꽤나 예민한 사람이라서, 그런 깨달음이 올 때마다 때때로 서글퍼진다. 강물처럼,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하류로 흘러간다. 모든 행복한 순간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추억으로 변해있다. 아름다운 순간은 음미하기 어렵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급하강 급상승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내리고 난 다음에야 그것이 어땠는지, 무엇이었는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다.


어머니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와 형이 아주 어릴 때, 참 예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는데, 당시에는 키우느라 정신이 없으셨다고.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알았다고. 그러니까 강물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잠시도 머물러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순간들은 강가에 핀 예쁜 꽃과 같고, 조각배에 타 있는 우리는 꽃을 제대로 쳐다보기도 전에 이미 떠내려 가고 있다.


그것이 시간의 성질이니 어찌할 수 없지만, 단지 아쉽다. 잠시 ‘멈춤’을 걸어놓고 음미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 사진들을 오랜만에 구경하다보면, 더더욱 그렇다. 당시에는 내가 그 순간의 완벽한 의미도, 황홀한 감정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스쳐지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한 순간일수록 깊은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쉬운가. 매 순간 완벽하게 느끼고, 존재하는 것은 연습의 문제일까, 아니면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의 한계일까. 해답을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떠오르는 감정을 글로 적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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