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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14. 2022

뭘 써야할 지 모르겠을 때

할 말 없는 날 글쓰기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다. 글을 꾸준히 쓰지 않는 요즘은 거의 매달 저 알림 메시지를 받는다. 써보라는데 매번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글을 쓴다.


브런치를 몇 년 동안 하면서 느꼈던 놀라운 사실은, 세상에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가 너무 다양해서 놀라웠다.


어떤 사람들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생각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쓰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오늘의 나처럼 할 말이 없는데 쓸 말도 없는데, 막연히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나’ 자체에 대한 동경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의 뚜렷한 요청이나 강요가 없음에도 뭔가 글쓰기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이끌려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때로는 책도 안읽고 글쓰기도 안하면서 막연히 ‘출간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았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글을 쓰는 사람에 가깝다. 무언가 새로운 생각이나, 천착하는 주제가 생기면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사라지기 전에 글쓰기를 통해 정리를 했다. 어지럽게 마구마구 생각하다가. 그걸 글로 옮기려고 하면 어딘가 모순이 꼭 생긴다. 글쓰기는 그런 충돌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필요없는 생각들을 삭제하고 논리를 더하기도 하면서 한 편의 글을 써놓고 나면. 그걸 주욱- 읽어볼 때는 새롭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나라는 존재를 나에게 배우는, 나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글쓰기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오늘은 그렇게 정리할 사유의 조각이 없다. 그야말로 몇 년에 한 번, 몇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할말이 없는데 그냥 글쓰는 날’이다. 할 말이 없으면 할 말이 없는게 주제가 된다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나는 왜 할 말이 없을까? 오늘은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대충 알 것 같다. 이전에 썼던 글을 자기복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였다. 이미 내가 쓴 글 들에는 겹치는 생각들이 많다. 여러번 썼던 주제에 대해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더 재밌게 새롭게 쓰고 싶은 욕심 같은 게 생길 때 실행력이 떨어지더라. 부담없이 쓸 수 있다는 게 브런치의 매력이라고는 해도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요즘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은데, 그 생각들이 조금 날카롭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만한 주제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경우엔 그냥 입을 다문다. 내 감정을 글쓰기로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논쟁적이거나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는 글을 계속해서 발행하고 싶지는 않다.


할 말이 없어서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왜 할 말이 없는지, 써보는 것도 좋겠다. 쓸 말이 없는데도 글쓰기가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보면 좋겠다. 글쓰기를 시도하는데 자꾸 실패하는 기분 나쁨에 대해서 써보면 좋겠다. 계속 망설이면서 썼다 지우는 답답함에 대해 써보면 좋겠다. 나는 못쓰는데 잘쓰는 누군가의 글을 자꾸만 읽으면서 느끼는 질투심에 대해 써보면 좋겠다.


소설가 김영하는 절대 쓰지 않을 소설들의 목록을 관리한다고 한다. 실패작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의 두려움을 극복한다고 한다. 오늘의 나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할 말이 없는 이유도 자꾸만 쌓이면 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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