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 필름을 타고!> 리뷰
이렇게 무해한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낸 작품은 흔치 않다. ★ 4.5
(스포일러 O)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청춘 영화도 아니고, 사무라이 영화도 아니며, 사랑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영화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아! 앞으로도 영원히 영화를 사랑하자!’고 소리치는 영화다.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를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영화를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한 바를 조곤조곤 설명하는 영화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사무라이 영화 덕후인 주인공 ‘맨발’이 친구들과 함께 여름 방학동안 자신의 사무라이 영화 <무사의 청춘>을 만들고, 이를 축제에서 상영한다는 이야기다. 미래에서 온 자신의 팬 ‘린타로’를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이런저런 역경 속에서도 끝내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저 사랑스럽다.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감독(마츠모토 소우시)은 그간 자신의 영화 인생을 통해 느낀 바를 이 작품에서 모두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 자신의 성장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면, 각 제목은 ‘영화에 빠지다’, ‘영화를 만들다’, ‘영화란 무엇인가’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한 사람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애착에 대한 전형을 보여준다. 누구나 영화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 그건 자신이 매료된 한 편의 영화일 것이다. 맨발에게는 <자토이치>같은 작품이 그렇다. 영화에 대한 어떤 취향이 생기고나면, 자연스럽게 싫어하는 영화도 생길 수밖에 없다. <썸머 필름…>에서 라이벌 '카린'과 카린의 로맨스 영화가 바로 그 상징이다. 이 시기 초보 영화인은 두 가지 질문을 번갈아 던지게 된다.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안 좋아하는 거야?’와 ‘사람들은 왜 저런 걸 좋아하는 거야?’ 자신의 세계가 너무 단단해진 나머지 다른 세계를 포용할 힘이 아직 없다.
영화의 중반부는 영화 제작론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영화를 보는 일과 얼마나 다른가. 영화 제작은 소설 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많은 돈이 들고, 항상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촬영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이를테면 예산이라든가, 시간이라든가, 각자의 상충하는 의견들, 촬영 여건들을 모두 고려하며 일종의 재즈 연주처럼 진행되는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영화는 주인공 ‘맨발’을 통해 잘 드러낸다. 자신의 능력 부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타인의 작업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을 가지는 장면들 또한 감독이 지난 습작 생활을 통해 느꼈던 무엇일테다.
후반부는 감독 본인의 영화론처럼 보인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한 바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를 만들고, 호흡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맨발은 비로소 달라진다. 모두에게 완벽한 영화란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사무라이 영화가 소중하듯이 로맨스 영화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다는 것을.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인연이 있을 뿐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처럼. 나쁜 영화란 없고 다른 취향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맨발의 깨달음이다. 이제 맨발은 영화와 장르에 등수를 매기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모든 작품에 나름대로 내재되어 있는 가치를 포용할 줄 안다.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서도 깨닫는다. 영화든 인생이든 승부하지 않는 한 아름다운 결말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이든 삶이든 소중한 결과물을 위해 다른 소중한 하나를 포기하는 선택의 과정일 것이다. 맨발은 상영회에서 두 주인공을 모두 살리려고 할 때, 즉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할 때 영화가 망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주인공을 죽이겠다는 결단이 영화를 영화로 만들고, 상대를 잃을 각오로 고백해야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맨발은 깨닫게 된다.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을 감독은 긴 영화를 감상하지 못하는 관객들에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틱톡이나 릴스로 대표되는 숏폼 콘텐츠에 영화 예술이 잡아먹힐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에 영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의 우려는 사실 과장된 것 같다. 영화가 조금 짧아질 수는 있어도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에는 네 컷 만화만 남거나, 10초 짜리 음악만 남을까? 그럴리가 없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최소 형식은 분명히 있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 긴 이야기(드라마)를 영화보다 좋아하고 있다. (내가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짧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긴 호흡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 린타로와 맨발의 검술 액션 씬을 보다가 울컥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나 또한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액션 씬을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유치하고 당황스런 장면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영화를 논리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오로지 감정. 그것이 전부다.
p.s. 주인공 '이토 마리카'가 <미쓰 홍당무>,<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하고 너무 닮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몰입이 더 잘됐다. ㅋㅋㅋ 영화 좋아하는 관상은 실재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