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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30. 2023

블록체인은 부처님의 말씀에서 왔을까

묘하게 닮은 블록체인과 불경의 전승 방식에 대하여.

7살이던가 8살이던가. 아무튼 그즈음의 나는 궁금했다. 은행이 돈을 안전하게 맡아주는 데 왜 보관료를 받기는커녕 이자까지 주는지. 나의 유년시절은 IMF와 함께였고 하필이면 은행 이자가 엄청나던 때였으니, 그 궁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은행이 돈을 팔아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행은 낮은 예금 이자와 높은 대출 이자의 차이를 통해 돈을 버는 기업이었다. 많은 예금을 유치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창조할 수 있으니 저축에 혜택을 주는 거였다. 단순히 돈을 비싸게 파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급준비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대출해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교묘하고 복잡한 세상이 있다니. 놀라웠다.


가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팔 수 있다는 이 관행과 전통이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금 세공사들은 업 특성상 많은 금들을 보관하고 있었고, 그들이 발행한 보관증(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일종의 확인증)이 마치 화폐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거운 금을 주고받는 대신 그 보관증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금세공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보관증을 유통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금세공사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금을 한 번에 찾아갈 리 없다는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보관증을 찍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밀이 까발려지면서, 금세공사는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을 계속하는 대신 금을 보관한 사람들에게 충실한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현대적 은행 시스템은 금세공사의 불투명한 장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통해 이제는 친숙해진 블록체인 기술은 은행이 장부를 관리하는 대신 모두가 공개된 장부를 가지고, 다 함께 검증하자는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모든 거래기록은 모든 사람의 장부에 동일하게 업데이트된다. 한 번 기록된 이후에는 변경이나 삭제가 불가능하다. 변경이나 삭제를 하려면 모든 사람의 장부를 조작해야 하는데, 전 세계의 모든 장부를 개인이 조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투명한 장부 시스템과 탈중앙화.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은 암호화폐라는 개념과 함께 쓰이며 새로운 경제를 창출했고, 세상을 전복시켰다.


그런데 블록체인의 이 방식이 나에게는 묘하게 고전적으로 느껴졌다. 초기 불교에서 불경을 전승하던 방식과 블록체인 기술이 상당히 겹쳐 보인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 곧 불경은 처음에는 문자로 전승되지 않았다. 수많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한데 모여 매일 같이 소리 내어 암송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모든 사람이 합의한 내용만 부처님의 말씀으로 정리했고, 정해진 말씀을 끊임없이 소리 내어 되뇌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필기구나 문자 체계가 정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문맹의 비율도 높았기 때문에 암송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송(合誦)이 주는 정교함도 그 못지않게 결정적이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경을 글로 쓴다는 것을 위험한 행위라고 여겼다. 적는 이의 실수로 오타가 발생할 수도 있고, 옮긴이의 사견이 첨가되어 내용이 오염될 수도 있다. 문서에 의존하면 분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대안이 없다. 반면 다 같이 모여 암송하면, 한두 명의 암기 미숙으로 전체의 내용이 오염될 우려가 없다.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라 분실의 위험도 없다. 함께 끊임없이 소리 내어 외우기만 하면 그 어떤 방식보다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승할 수 있다.


정보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참여자들의 분산된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지혜가 이미 우리의 역사에서 익숙하게 존재했고 오랫동안 사용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블록체인의 아이디어가 전통적인 불교 국가인 일본(비트코인의 '사토시 나카모토')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일까?


초기 불교에서 불경을 함께 외우며 임의로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도록 그 투명성을 유지한 것처럼, 최첨단 과학기술 시대의 누군가는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의 투명성을 유지하려고 시도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고전을 읽으면서 옛 소설의 플롯이 무척이나 현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금세 고쳐 말했다. "고전이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학과 영화가 여전히 고전의 자장 안에 있다"고.


중세 유럽에서부터 공고하게 유지된 비밀스러운 은행 시스템을 초기 불교의 방식으로 탈중앙화***하겠다는 발상을 보면 김영하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같지만, 고전적인 지혜를 현명하게 변용할 뿐이라는 것. 블록체인이라는 이 비장한 시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 금융회사가 고객의 지급 요구에 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자산을 ‘지급준비금’이라고 한다. 또 적립 대상 채무 대비 지금 준비율의 비율은 ‘지급준비율’이다. 금융회사는 예금 종류마다 차등화된 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장기주택마련저축은 0.0%, 기타 예금은 7%에 달한다.

출처: 한경닷컴사전


현재 대한민국의 법정 지급준비율은 7%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어떤 은행이 1000억 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중 최소 70억 원(7%)은 은행이 실제로 보관하고, 나머지 930억 원은 대출 등으로 운용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은행은 실제로 70억의 현금만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고객들에게는 930억 원을 대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 17세기 영국의 '골드스미트 노트' 사례를 쉽게 풀어 설명했습니다.


***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공신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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