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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07. 2023

짧은 글

그냥 쓰는 글

조용한 방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가끔은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 적당히 피곤해서 침대에 누우면 금방이라도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밤을 놓아주기가 조금 아쉬운 기분이다. 영화를 볼까, 게임을 할까, 책을 읽을까, 음악을 들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보통은 그렇게 영화를, 게임을, 책을, 음악을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 잠에 든다.


오늘은 글을 쓸까. 하고 글을 쓴다. 할 말이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다. 할 말이 없는 것도 글감이니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잠드는 것이 무섭다. 벌벌 떠는 두려움이 아니라, 무거운 가스처럼 바닥에 은은히 깔려있는 두려움이다. '잠에 들면... 어쩌면 다시 눈을 못 뜨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다. '내일 나는 일어나지 못할 거야!' 단언하는 두려움도 아니고,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하는 진지한 두려움도 아니다. 월요일에 산 로또복권 같은 두려움이다. 복권 따위 절대로 당첨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어렴풋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것처럼. 이러다 언젠가는 눈을 뜨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어렴풋한 두려움이다. 더 두려워하려 해도 그 이상 두려워지지 않고, 그렇다고 잊히지도 않는 채로. 그냥 내 주위를 부유하는 그런 기분을 늘 느끼면서 살아왔다.


밤에 글을 쓰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최근 김장훈의 노래를 줄곧 들었다. 로이킴의 노래도 많이 들었다. 김장훈 아니면 로이킴, 로이킴 아니면 김장훈. 두 가수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노래를 씹어서 부른다는 것이 아닐까. 그냥 음을 뱉지 않고, 가사를 뱉지 않고. 그걸 조금 어금니로 씹어서, 자신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창법처럼 느낀다. 멀쩡한 사진에 자꾸 이상한 필터 효과를 잔뜩 발라놓은 것 같은데, 그 일관되게 뭉개지는 감성이 참 좋은 거다. 반복적으로 한참을 들으며 지냈다.


오늘은 날씨가 궂다.


5월 첫 주에는 친한 친구와 베트남 나트랑에서 내내 바다 수영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날씨에, 맛있는 것을 먹고, 매일 같이 바다에서 워터파크에서 수영을 하고, 술을 마시고, 마사지를 받았다. 치사량 수준의 행복이었다. 시간이 입자처럼 내 옆으로 흐르는 모양이 마치 눈으로 보이는 듯했다. 즐거운 만큼 실시간으로 아쉬웠다는 말이다.


글이 중구난방이다.


뚜렷한 동기도 목적도 없는 글이니 맥락도 결론도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보다 더 나른해졌으니, 쓰러지듯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쌓여버린 이번 달의 약속들을 떠올린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어느 정도 귀찮은 것 같다. 약속이 생겨날 때는 잔뜩 반가운데, 막상 만나려면 몸이 무거워진다. 약속이 생겨날 때가 진심일까, 무거운 몸이 진심일까. 잘 모르겠다. 좋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게, 그래도 감사한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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