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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17. 2023

마라탕을 잃어버린 자

그라데이션이 없는 마음에 대하여, 하루아침에 대하여.

별 이유 없이 막연하게 멀리하던 것들이 있다. 무슨 대단한 신념으로 "안 해!" "안 가!" "안 먹어!" 하는 것이 아니고, 괜히 낯설고 어색해서 그냥 안 하고 안 가고 안 먹게 되는 것들. 


"거창하게 무슨 파티룸이야~"했지만 막상 아르바이트하던 친구들과 왁자지껄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 "무슨 소개팅이야~" 했지만 좋은 사람 만나 알콩달콩한 연애를 했던 기억, "무슨 트러플 짜장면이야~"했지만 먹어보니 눈이 땡그라 졌던 기억, "무슨 독서모임이야~"했지만 꼭 맞는 영화 친구를 만난 기억 등. 낯섦과 어색함을 한 계단만 넘어가니 왜 멀리했나 싶을 정도로 괜찮았던 것들. 나에게는 마라탕도 그랬다.


마라탕은 대학교 학사운영실에서 일할 때 처음 먹었다. 2020년쯤이니까 이미 마라탕 집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고, 마라 어쩌구 상품이 나올 대로 나와서 유행이 벌써 지나갈 무렵이었다. 마라탕이라는 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지나가다 우연히 먹게 되는 음식은 또 아니기에 그냥 안 먹는 대로 살고 있던 와중이었다. 


처음 먹어본 마라탕의 맛은 실로 놀라웠다. 쓰촨(四川)의 맛이 날 줄 알았더니, 조선의 맛이었다. 감칠맛 가득한 사골 베이스 국물이 입에 짝짝 달라붙었고, 매운맛을 1단계로 선택하니 '마라'는 거의 정체성만 남아 있었다. 한국말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어느 일본 라멘집의 자판기처럼 극한으로 한국에 최적화된 경험이었다. 중국에서는 "마라탕 국물도 먹을 놈"이 짠돌이를 향한 욕으로 쓰인다던데, 한국식 마라탕에는 성립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항상 밥까지 말아서 야무지게 해치웠다.


마라탕을 처음 먹은 그날 이후, 지난 몇 년 간의 마라탕 열풍이 거품이 아니었음을 완벽히 알게 되었다. '이 맛있는 걸 자기들끼리 먹고 있었다니.' 불특정 다수에게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껴버렸다. '마라탕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저 지경이 된 것인가' 가끔 궁금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답을 혀로 받은 기분이었다. '마라탕이 이것이옵니다' 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도 마라탕을 먹자고 잡아끌었다. 마라탕 좋아하는 사무실 동료분들과 '마라탕 팸'을 결성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마라탕을 먹었다. 언제나 약간 어색한 사이였지만, 마라탕으로는 연대할 수 있었다. 마라탕 먹기로 한 날은 오전부터 파블로프의 개마냥 침을 흘렸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입에 침이 고여서 막 혼자서 츄릅츄릅 삼키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그랬다.


2023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마라탕을 꼽고 실패 없이 즐겼었는데, 얼마 전 문득 나의 마라탕 사랑이 끝났음을 느꼈다. 배도 고프고, 마라탕도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간 것이었는데 어쩐지 옛날처럼 맛있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집이 마라탕을 못하나 싶어서 얼마 뒤 다른 집도 가보았는데 역시 별로 맛이 없었다. 맛있게 먹었던 마라탕 집을 굳이 다시 찾아가서 먹어보았는데도 그랬다. 투수가 입스에 걸려서 하루아침에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것처럼, 내 혀가 마라탕의 맛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마라탕을 질릴 만큼 먹은 것도 아니고, 먹다가 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마라탕과 소원한 사이가 되다니 어쩐지 서글퍼졌다. 천천히 붕괴하는 건물이 없는 거랑 같다고, 원래 마음은 '하루아침'이라고. 우주의 섭리라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할까.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이 이만큼이나 예고 없이 사라져도 되나 싶다. 어쩌면 마음에는 이렇게 그라데이션이 없을까. 





사진출처: 푸드장 [잇쿡]마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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