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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17. 2023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1. 영화를 보는 요즘의 태도


<왓챠피디아> 앱에 내가 보는 모든 영화를 기록한다. 영화를 보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별점을 남기고, 코멘트도 꼭 적는다. 내가 본 모든 영화의 별점과 코멘트가 앱 속에 다 들어있다. 거의 시간순으로 쌓여있기 때문에, 가끔 그걸 역순으로 내리며 읽는다. 낯간지러운 코멘트도 엄청나게 많고, '내가 이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니!' 감탄하게 되는 문장들도 있다.


영화를 몇 년 동안이나 열심히 보면서 관점이나 취향도 여러 번 바뀌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른바 명작만이 진짜 영화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고, 어느 시기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영화에 몰입한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 빈틈이 많아도 사랑스럽고 유쾌한 작품에 유독 이끌리던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그 모든 게 다 섞여있는 기분이다.


과거에는 나 스스로도 평론가라는 마음으로 사뭇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열심히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해석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에는 감정을 잘 느끼려고 노력한다. 평론가처럼 예리하고 진지하게 영화를 볼 때 찾을 수 있는 재미도 귀하지만, 결국 영화는 내가 아닌 것을 경험하고, 잠시 그 사람이 되어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최대한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이해해 보고, 가늠해 보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해 본다. 같이 분노하고, 기뻐하고, 사랑해 본다. 그와 함께 이별하고 처참하게 무너져 본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더 각별하다. 가끔은 내가 실제 겪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오랜 여운으로 남는 영화들이 많아졌다.


2. 영화 고르기


글을 쓸 때 웬만하면 비슷한 주제로 연달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제목을 지을 때도 계속 변화를 준다. '~까?' 로 끝나는 제목을 지었다면 그다음에는 명사형으로 짓고, 그다음에는 '~다' 로 짓는 식이다. 내 생각이 편협해서 비슷한 주제의 글도 자주 쓰게 되지만, 어쨌든 계속 변화를 주려고 한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너무 철학적인 영화를 연달아 보거나, 액션 영화만 보거나 하지 않는다. 가벼운 영화를 보면 그다음에는 무거운 영화를 보고, 저예산 영화를 봤다 싶으면 굳이 볼륨이 큰 영화도 찾아본다. 문제적인 영화를 봤으면, 헐리우드 작법에 충실한 오락영화도 보고, 내키지 않아도 다큐멘터리를 보고, 퀴어 영화도 보고, 페미니즘 영화도 보고, 스포츠에 관한 영화도 본다. 재미없을 것이 분명한 영화들이나, 흘러간 시시한 영화들도 본다. 의도적으로 섞어서 본다.


한쪽으로 편향된 사람들을 보는 걸 어릴 때부터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정도 중립을 지키면서 살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편을 정하지 못하고 중립국 선언을 하다가 멀어진 관계가 문득 떠오른다. 그래도 맹목적으로 어느 하나에 치우치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막 섞어서 보는 탓에 얇고 넓은 교양이 생긴다는 장점도 생겼지만, 아무리 봐도 재미없는 프랑스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3. 오락성 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근래 혼자서만 하던 생각인데, '오락성 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싶을 때가 있다. 세상은 점점 PC 해지는데 누군가를 재미로 죽이는 영화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내가 도덕적인 사람이라서가 절대 아니고, 그냥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나. 주인공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악당이 나쁜 짓을 했다는 이유로 막 무참히 쓸어버리는 게 얼핏 통쾌하다가도. '아니, 정의의 사도가 저래도 되나' 싶은 거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지막 전투씬을 보면, 타노스의 군대를 어벤져스들이 진짜 신이 나서 팬다. 갈라 죽이고, 때려죽이고, 찢어 죽이고... 아주 화려하게도 살육하는데, 갑자기 영화관에서 좀 섬찟한 거다. 타노스의 일개 졸병들도 누군가의 부모, 자식, 배우자일 텐데... 줄 좀 잘 못 섰다고 저렇게 막 죽여도 되나 싶었다.


존윅도 그렇다. 존윅이 왜 화났는지는 알겠는데. 진짜 너무 많이 죽인다. 막 간결하게, 누군가의 삶을 영점 몇 초만에 끊어 버린다. 아무리 화났어도 수백 명을 그렇게 효율적으로 죽이는 게 좀 내키지가 않았다.


"정의를 위해 널 강간할게!" 이게 당연히 이상한 것처럼 "정의를 위해 널 죽일게!"도 가끔은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느낌적인 느낌.  


밀란 쿤데라는 소설이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고 말했다. 가공된 이야기 속에서 추악하고, 잔인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안전하게 경험해야만 우리가 오히려 현실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락성 살인'이라는 것도 태클 걸 만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뭐.


4. 한국 영화 종말론


요 근래 한국 상업영화들이 너무 재미가 없다. 재밌으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려고 만드는 영화 같다. 당연히 투자를 받기 위해서겠지만, 온통 베낀 영화 천지다. 책임감도 없이 베끼고, 절대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매끈하게 진행된다. 그냥 매끈하게, 재미있든 재미없든 적당하게 만들고 무난하게 흥행에 실패한다.


말하자면 영화들이 다 백종원식 프랜차이즈 음식 같다. 그냥 적당히 맛있는데, 그게 전부인. 딱 그 정도의 영화들 뿐이다. 사실 백종원 님은 칭찬을 받아야 한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합리적인 맛을 주는 그의 가게와 요리는 어느 정도 세상의 행복에 기여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난 백종원 아저씨 좋아한다.


반면 영화는 안 봐도 그만인 것이다. 가끔씩 재밌자고 보는 건데, 큰돈 들여서 그렇게 안일하게 만드는 게 맞나 싶다. 설상가상 영화값도 올라서 민심이 차게 식었다. 재미도 감동도 없고, 예고편만 봐도 영화 전체가 예상되는 시시한 작품들 뿐인데, 보러 갈 리가 없다.


나는 향후 십 년 안에 한국 영화판이 완전히 망하고 아예 새로 시작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병헌 감독이 클리셰만 시원하게 깨 주었을 뿐인데, <극한직업>이 천만을 찍은 것처럼. 과감하고 재능 있는 감독이 도발적인 작품을 성공시키면 이 판도도 어느 정도 바뀌리라고 생각한다. "니가 뭔데, 너 뭐 돼?"라고 말하면 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래서 제목도 비겁하게 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라고... ㅎ


5. 시나리오 쓰기


시나리오가 쓰고 싶다. 시나리오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는데, 막상 워드를 켜놓고 보면 한 줄도 못 쓰겠어서 어영부영 넘어온 게 지금이다. 올해도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안 써지면 어쩔 수 없다. 또 일 년씩 넘어가겠지.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내 손에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늘 신기하다. 막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떠드는 장면을 만들어놓고 나면, 그 장면이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살아 숨 쉰다. 이야기에 결말을 지어놓고 나면, 그 이야기는 그 이야기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길로 계속 살아갈 것만 같다.


시나리오를 써내면 어떤 기분일지 알 것 같아서 더 쓰고 싶다. 머릿속에는 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는데, 글로 쓰기는 왜 이렇게 힘들까.


언젠가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되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2015년에 나는 아무 이유 없이 21장짜리 단편소설을 완성한 적이 있다. 몇 주 동안 소설을 쓰고, '-끝-'이라는 마무리를 지어냈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소설을 완성한 이후에는 삶도 많이 변했다. 자존감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내면에 어떤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본 사람이다' 하면서 혼자서 되게 당당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자신감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튼 요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가 있고, 그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꽤나 진지하게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 그거 썼다. 힘들었다.' 하는 에세이도 쓰고 싶다.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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