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Aug 17. 2023

대화를 잘하려면 어떻게

정말 궁금한 것만 물어보기

세상에 대화만큼 재밌는 게 있을까, 생각해 보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가끔 내가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경험한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얘기하려고 경험하는 기분이 자주 든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그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떠드는 게 나는 더 재밌다.


친구들과 만나서 나는 무엇을 하나. 거의 떠든다. 여행을 가면 낮에 이런저런 재미있는 것들을 시도하지만, 결국 하이라이트는 밤의 수다에 있다.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란 건 목적 자체가 낮의 활동이 아니라, 밤의 대화에 있는 것 아닐까. 무언가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가고 저녁을 든든히 챙겨 먹은 후에 찾아오는, 시간이 잠깐 멈춘 듯한 그 고요의 시간. 오랜 친구들과 눈치 보지 않고 편한 차림과 자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드는 게 나는 그렇게나 즐겁다.  


지난 연애들을 떠올려 본다. 여자친구를 만나서 나는 무엇을 했나. 거의 떠들었다. 마찬가지로 대화하려고 데이트를 한 것 같다. 오늘의 데이트는 내일의 이야깃거리, 올해의 데이트는 내년의 이야깃거리, 둘만의 서사가 구축되고, 둘만의 복선과 반전이 암호처럼 생겨날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그 수많은 대화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에 와서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그 무수한 대화들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다는 것.


사는 내내 대화를 잘하고 싶어서 알게 모르게 노력을 많이 했다. 재밌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막 연구해보기도 하고, 한동안 그 사람이 말하는 스타일이나 단어, 리듬을 흉내 내보기도 하고 그랬다. 학창 시절 교회를 다닐 때는 선하고 유쾌한 교회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 했고, 동네에 재밌는 친구나 형들이 있으면 어떻게 말하는지 관찰했다.


대학교 1학년 때 5살 많은 과 선배가 있었는데, 대화 스킬에 있어서 그 형은 거의 이데아(Idea)였다. 형은 아베 크롬비를 자주 입고 다녀서 '아베 형' 혹은 '아베 오빠'라고 불리곤 했다. 막 촐랑거리지 않고 여유 있게, 약간 실실 웃으면서 툭툭 말을 던지는 편이었는데, 당시의 나에게는 그 모습이 그렇게나 고급스럽고 재치 있게 보였다.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그 형의 잔상이 내 몸에 잔뜩 배었다. 내가 하도 그 형처럼 웃고, 말하고, 행동하다 보니 동기나 선배들은 나를 한동안 '리틀 아베'라고 불렀다.


오랫동안 연구한 만큼 대화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너무나 많지만, 한 편의 글에 그걸 다 담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 문제를 차치하고도 내가 누군가에게 대화에 대해서 훈수 두는 글을 쓸 만큼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무언가를 늘어놓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웬만하면 지키려고 하는 대화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 정도는 얘기해 봐도 괜찮겠다 싶다. 나는 이 원칙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정말 궁금한 것만 물어본다."는 것이다.


대화는 거의 질문과 답변이다. 우리는 의외로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상대방은 언제나 미지의 대상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번갈아 질문과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느끼셨나요?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어떤 경험을 하고 싶나요?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무엇을 싫어하시나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필연적으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대화의 대부분은 이런 중요한 질문들을 대화를 위해 억지로 '발생'시킬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대화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짜낼 때. 이 질문들은 모두 의미 없는 노력이 되어 버린다. 애초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으니, 상대방도 별로 흥이 안 나고 대답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영혼 없이 무의미한 정보 교환만 일어나고 만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대화의 중간중간, 습관처럼 속으로 되묻는다. "내가 이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가?" 스스로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그냥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얘기를 한다.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다.


재미있는 대화를 하려고 고심하다 보면, 생각보다 상대방에게 무언가 궁금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려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려면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진짜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 진짜 궁금하기 위해 상대방을 좋아하기.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 원칙을 충실히 지켰을 때 대화가 망한 적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