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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27. 2017

친구 집 냄새

- 친구 집 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었지.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면 꼭 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건 단순히 뭘 끓여먹었다거나 무얼 쏟았다거나 그런 일회성 사건으로 생겨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놀러갈 때마다 일년 내내 때로는 몇년 까지도 지속되는 고유한 냄새였다.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유지된 습관이나 버릇으로 풍겨오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그 냄새는 그 가정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냄새였다.


(굳이 향기가 아니라 냄새라고 서술하는 이유는. 그게 불쾌한 향이어서가 아니라. 뭔가 더 향토적인 느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우리집에는 그런 냄새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꼭 친구 집에만 놀러가면 그런 냄새가 났다.


누구의 집에서는 늘 빨래 쉰내같은 게 났고

어떤 집에서는 방향제 냄새가

또 다른 친구의 집에서는 독할정도로 진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였다.

나는 이 냄새만은 예외로 향기라고 부르고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는데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명확하지 않은. 그저 그렇게 추억속 심연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친구의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러고보면 이제 그 친구의 모양과 형태는 전혀 없음에도 역설적으로 향기만은 남아있는 것이다.


그 친구 집은 평수도 꽤 넓고. 앤티크한 가구들로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했다. 난 그 친구집에 놀러갈 때마다 아주 교양있는 그의 어머니도 만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이목구비가 아니라 어떤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분위기로만 남아있으신 분.


어머님이 반겨주시던 그 집에는 오후의 햇살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서부터 시작된 은은한 갈색빛으로 가득했다.

집은 늘 따뜻했고. 어머님이 내주시는 간식도 참 고급스러웠다. 나는 친구가 준 노마골드 영양제를 세개씩이나 먹었다.


그 집의 냄새를 굳이 표현하자면.

서양식 단팥죽 냄새같은 것이었다.

서양식 단팥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설명하려면 서양식 단팥죽이 적당하다. 뭔가 달큰하면서도 한국적인 냄새는 아닌. 그렇다고 영 독한 향수냄새도 아닌. 방향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때나 늘 은은하게 스며있는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를 참 좋아했다.


그 향기를 깜빡 잊고 살아가던 어느날. 스무살 무렵이었을텐데. 우연히 그 냄새를 다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어떤 옷가게에서였는데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걸음과 숨을 멈추고 엇! 하는 신음을 쏟아냈다.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추억과 아늑함이 코로 한웅큼 갑자기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 한번 물어봤어도 좋았을 걸. 그냥 잠깐의 회상과 의아함으로 넘기고 지나가버린 것이 오늘은 참 후회가 된다.


중 고등학생들을 과외하러 다니면서 참 다양한 집에 들르게 되는데 집집마다 나는 그 독특한 냄새가 새삼스럽게 재미있을 때가 있다.


친구들의 집 냄새와 참 비슷한 집이 많아서. 가끔은 잊고 있던 옛 친구가 생각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다니다보면 언젠가 그 서양식 단팥죽 냄새로 가득한 학생의 집에도 들르게 되지 않을까.

괜시리 기대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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