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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17. 2023

생일 축하해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너를 우연으로 밀어 넣는 일

네가 태어난 후에서야 너의 우주는 창조되었지. 신기하지 않니?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네가 없었다는 사실 말이야.


네가 태어난 뒤에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엇박자가 생겼는지 너는 아니. 생각해 봐. 너 때문에 만원 버스에 타지 못한 숱한 사람을, 네가 등록하는 바람에 대학에 떨어져 버린 학생을, 네가 집어간 마지막 케이크를 구매하지 못한 사람을, 너를 좋아하느라 밤을 새우며 떨었을 누군가를, 너로 인해 상처받고 눈물 흘렸을 누군가를.


네가 집 밖을 나설 때마다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창조되었단다. 명심해.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너를 우연으로 밀어 넣는 일. 이 어지러운 세상은 네가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밀려 나오는 날부터 한 층 더 시끄러워졌다는 걸.


네가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상대방은 다른 이를 만날 기회를 박탈당했지. 너는 항상 어떤 공간을 점유하느라 네가 가진 무게만큼, 넓이만큼, 가진 돈만큼. 고기압처럼 무엇이든 밀어내었고. 네가 가진 매력만큼 혹은 술주정만큼 무엇이든 끌어당겼지.


너의 중력만큼 이 세상은 왜곡되었단다. 그 왜곡이 겹쳐 어느 겨울 눈길의 고속도로 48중 추돌처럼 연쇄적으로 흩뜨려졌단다. 네가 태어나버린 후로 무엇이든 바뀌었단다. 제자리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라는 것도 없어졌단다.


네가 없었다면 코로나는 없었을지도. 우리가 아는 대통령의 순서가 바뀌었거나, 사람이 바뀌었을지도. 덕분에 상상 못 할 재앙이 예방되었을지도(그렇다면 고마운 일이겠다). 모든 미래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너는 지금을 사랑하니? 네가 어질러 놓은 세상에 만족하니? 우리 모두가 엉망으로 엇박자를 만드느라 세상은 피로하다는데,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지. 밀어내고 끌어당기면서 살고 있지.


너를 만난 게 기적 같아. 꿈같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너와 나의 우주와 그 모든 리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단다.


오늘은 네가 태어난 날. 아무도 모르게 미래를 헝클어뜨리는 리듬의 탄생을 기억하면서, “생일 축하해.” 하고 싶은 말은 오로지 이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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