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Oct 29. 2023

수화기 너머로 만난 사람들 - 콜센터에서

티켓몬스터 콜센터에서

2011년 여름, 군대 갈 날짜를 받아두고 나는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티몬이 '티켓몬스터'이던 시절, 50명이 모이면 반값이 되는 쿠폰 상품을 불티나게 팔아대던 신생 소셜커머스 회사였다. '소셜커머스'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법은 허술했고, 규정은 여러모로 악랄했다.


일개 상담원인 나를 가장 난감하게 만들었던 것은 구매 후 7일이 지나면 어떤 사유에서도 환불을 해주지 않는다는 규정이었다. 기간 내 사용하지 못한 쿠폰은 그냥 증발했다. 외식 상품권, 숙박권, 마사지, 미용실, 카페, 체험 전시 등을 50%의 할인률로 제공한다는 명분이었다.


7일 이후 환불은 안됩니다. 구매 시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고객님도 동의하고 구매하신 겁니다. 앵무새처럼 그 정도의 대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환불규정이 너무하다는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스무 살 무렵의 나에겐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었다.


대체로 짜증을 내며 수긍했지만,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겠다고 악을 쓰는 통화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걸려왔다. 내 어깨만 한 넓이의 책상에 앉아, 허름한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주 아득해졌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아도, 칙칙한 도시의 풍경뿐.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전화가 왔고, 그래서 받았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중년 여성이었다. 환불문의였다.


"식사권 2장을 여기서 구매했는데... 혹시 환불이 될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00 입니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어떻게 되시나요?"

"0000 입니다."

"김00 고객님 본인 맞으신가요?"

"아... 제가 본인은 아니구요. 제 딸인데..."


본인이 아니라니,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건조하게 말을 끊고 매뉴얼을 외웠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구매자 본인에 한해서만 상담이 가능합니다."


가족이 전화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지만, 응대가 가능한 경우는 없었다. 본인이 직접 전화 주셔라. 안내하고 끊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전화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아, 네. 그런데 제 딸이..."

"네?"

"제 딸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런데 딸 핸드폰으로 티켓을 사용하라는 문자가 왔더라고요. 제 생일에 식사하려고 구입해두었다고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자보고 연락드려요."


"아..."


머리가 잠시 멈추는 기분이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되지?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일이니까 매뉴얼을 읊어야 하나?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멍하니 있었고. 고객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일(환불)로 전화 걸어 본 적이 없는데, 저에게는 작지 않은 금액이라 한번 여쭤봤어요."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당시 돈으로 20만 원이 넘는 호텔 뷔페 식사권이었다. 할인이 적용된 가격이었으니, 정가는 훨씬 비쌌을 것이었다. 환불을 받으려고 지어내는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어느 부모가 환불을 받으려고 딸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겠나.


"어머님, 말씀드렸다시피 구매자 본인이 아닐뿐더러 해당 상품은 구매한 지 7일이 한참 지난 상품이라, 본인이 전화를 주셨어도 환불은 불가능한 상품입니다. 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규정이 있을 수도 있어서, 확인 후에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이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나는 건성으로라도 했어야 할 위로의 말조차 건너뛰고, 그냥 일을 했다. 꼭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이전의 다른 사례를 떠올려보아도 그런 노력들은 별 숙고도 없이 묵살되곤 했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숙제를 미룬 것처럼 시간을 벌어놓고 전화를 일단 끊었다.


의자를 뒤로 밀고 매니저님 자리로 갔다. 매니저님은 콜센터 관리자답지 않게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니, 너무 안 됐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20만 원이 넘는 식사권을 마음대로 환불해 줄 권한이 없는 건 매니저님도 마찬가지였는지. 자기가 한 번 알아보겠다며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쳐냈다.


며칠이 지나고 매니저님이 나를 부르셨다. 차장님 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환불이 가능하다고 했다. 심장이 좀 뛰었다. 빨리 전화를 해드려야지. 순간 뭐라도 된 듯 우쭐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정말 '일'을 했구나. 무언가 해결이라는 걸 해보는구나. 그런 마음이었다. 규정에만 맞으면 환불은 어려울 게 없었으니, 전화해서 선심 쓰듯 안내를 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어른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매니저님은 '환불이 가능은 한데, 서류 확인이 필요하니, 팩스로 서류를 보내달라는 안내를 하라'라고 하셨다. 필요한 서류는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본인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필요한 절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지만, 그때는 괜히 "돈을 돌려받고 싶으면 딸의 죽음을 확실히 증명하세요. 가족은 맞는 거죠?"라고 묻는 기분이어서 불편한 감정이 치솟았다.


좀처럼 전화할 맛이 나지 않았다. 이 전화가 왜 나한테 걸려왔을까, 나는 왜 알아본다고 했을까. 내가 꼭 전화해야 하나, 매니저님이 해주시면 안 될까. 이런저런 불만과 원망으로 괜히 전산만 새로고침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티켓몬스터 상담원입니다. 저번에 문의하셨던 거요... 환불이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요. 팩스로 보내주시면 확인 후에 환불 진행해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서류인가요?"

"김00 고객님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어머님 신분증 사본하고요, 환불받으실 통장 사본을..."


어머님은 난처하다는 듯이 맥없는 웃음을 지으셨다. 바람 같기도 하고 웃음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들릴 듯 말듯한 소리였다.


"아... 그러면 그냥... 안 할게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한동안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환불이 되니 안되니 하며 시간이 끌리는 동안 그 어머님께 아픈 기억을 자꾸 상기시킨 듯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지만, 마음은 괜히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 축하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