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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03. 2023

쓴다고 써지는 게 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에 글 한 편을 쓴다는 것

일주일마다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주일에 한 편이면 한 달에 네 편이고, 일 년으로 치면 무려 마흔여덟 편이다. 보통 에세이집 한 권에 그보다 적은 글이 수록되어 있으니 양으로도 적지 않다.


콘텐츠 세부에 관해서도 그렇다. 술 취한 아저씨처럼 했던 얘기를 반복할 수는 없으니,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고 나름대로 문장을 다듬어 A4 한 장, 혹은 두 장 분량으로 무언가 쓴다는 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 둔다. 글을 쓰기 전부터 해온 습관인데, 뭔가 활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순간순간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를 영영 잃어버리기 싫어서 그랬다. 브런치에 쓴 대부분의 글들이 메모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생각하고, 메모하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글이 툭 튀어나오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재료를 가지고 레시피대로 수행하면 완성되는 요리와는 달리 글쓰기는 아이디어와, 생각의 확장과, 조합과,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도, 생각의 확장도, 조합도, 숙성도. 나는 모두 피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이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쓴다는 얘기를 들으면 신기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정하게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프겠다는 다짐으로 아파지는 것이 아니듯이, 나에게는 무언가 쓴다고 써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가끔은 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얘기들을 벌써 다 글로 써버린 듯한 기분도 든다. 예컨대 서운함을 섭섭함으로, 섭섭함을 아쉬움으로, 아쉬움을 서운함으로. 비슷한 생각들을 적당히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게 아니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서 아직 글로 적기 어려운 것들이다. 또는 별 의미 없이 불쾌하고, 선정적인 생각들이거나, 나 이외에는 아무도 감흥 없을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런 단상을 공개된 곳에 막 적어대기는 좀 그렇다.


성실하게 창작물을 발표하는 작가들을 보면 그래서 경외심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이사카 코타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들을 한동안 참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어쩐지 흥미가 떨어져 찾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성실하게 책을 내고 있다. 매번 새로운 인물과 세계를 창조해서 선보이고 있다. 가끔 서점에서 그런 작가들의 신간을 발견할 때. 심장이 찌릿하다. 이렇게 재능 있고 성공한 작가들도 쉬지 않고 쓰고 있다는 생각에.


이 피동의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능동으로 바꿀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런데 그건 다짐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띄엄띄엄 쓰다 보면 언젠가는 그 비밀을 알 수 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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