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나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소년 ‘파이’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해 간신히 올라탄 구명보트에서 뱅골호랑이와 함께 표류하는 이야기다. 작은 배 위에서, 파이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내부적으로 불안한 동거를 계속하게 되고, 외부적으로는 기상악화 등 다양한 종류의 죽을 고비를 극복해낸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야기 내내 파이가 겪는 신비로운 사건과 역경 만큼이나 놀라운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밝혀지는 보험회사의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그렇게 긴 시간동안 표류를 견뎌낸 사례는 없었으며, 호랑이와 함께였던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바나나송이를 타고 오랑우탄이 보트에 옮겨 탔다는 파이의 증언 등에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파이의 표류 이야기를 취재하던 기자는 파이가 뱅골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표류했다는 첫번째 이야기가 진실인지, 사실 호랑이같은 것은 없었다는 두번째 이야기가 진실인지에 대해 묻는다. 실화인지, 우화인지. 도대체 진짜가 무엇인지 영화를 보는 모두가 귀를 쫑긋하게 되는 대목이다.
거기서 사건의 당사자이자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중년의 파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나요?”
그는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확정해주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라 생각하냐고도 묻지 않는다. 대신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느냐(Which story do you prefer?)’고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정답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해독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저 해석이라는 것.
예를 들어볼까. 식당에 갔다. 건조한 표정의 종업원이 음식을 우당탕탕 내려놓는다. 사과도 없이 홱 가버린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싸가지 없는 종업원의 무례한 서빙일까?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려 했는데 손이 미끄러진 것일까? 그릇이 너무 뜨거워서 던지듯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애초에 사과할 마음도 없었던 철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속으로는 미안했지만 쑥스러운 나머지 사과할 타이밍마저 놓쳐버렸을까? 하루종일 일이 너무 힘들어서 조심성이 없어졌을까?
이 모든 가정에 분명히 진실은 있겠으나 그 사람의 본의가 무엇이었는지는 결코 알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나의 선택이다. 무례한 종업원의 성의없는 서비스일수도 있고, 수줍고 미숙한 알바생의 실수일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나요?' 머릿속의 파이가 묻는다. 그러면 숨을 고르고 대답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요. 수줍고 미숙한 알바생의 실수겠지요.’ 두번째 이야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가짐과 기분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에게 그 누구보다 뛰어난 한 가지 재능이 있다면,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능력이다. 나는 결코 상대방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여러 개라면, 나는 무조건 긍정적인 쪽을 택한다. 상대방의 말을 꼬아서 듣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가 선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말과 행동을 해석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선택할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도, 부정적인 것을 택할 이유가 없다. 안그래도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한 이 삶 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