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유, 자유인 것 같애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은 술자리에서 질문을 하나 받는다.
"감독님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제일 중요한 거요. 자기 애나 목숨이나 그런 거 말고요."
구경남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한다.
"자유, 자유인 것 같애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이상이나 남의 욕망 같은 것에 빠져가지고 괜히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만 원하구 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자유. 에, 그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크 라캉이 말하지 않았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누가 좋다고 하면 좋아 보이고, 다들 갖고 싶어 하면 나도 갖고 싶어지고, 예쁘다고 하면 슬며시 예뻐 보이는 게 사람 마음의 생김인 듯 싶다. 모두가 확고한 취향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면, 연예인이 신었다고 안 팔리던 신발이 갑자기 완판 된다거나, TV에 한 번 나왔다고 한산하던 여행지가 갑자기 붐비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취향의 운동화가 마침 한정판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한정판 운동화를 원하는 무수한 타인을 보자 갑자기 운동화가 가지고 싶어진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처럼 내 욕망이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건 어찌 보면 참 어리석고 슬픈 일인데, 거기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가능할까? 세상이 스스로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을 쉽게 내버려 두던가. 때로는 거의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수준으로 흔들어 놓는다.
남들 다 싫다는 걸 혼자 좋아하거나 다들 좋아하는 걸 혼자 싫어하는 사람들의 머리채를 어떻게든 잡아챈다. 너 혼자 잘난 척이니? 너도 저기에 살고 싶잖아. 너도 거기에 가고 싶잖아. 너도 이거 갖고 싶잖아. 쟤랑 사귀고 싶잖아.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마. 너도 원해. 아닐 리가 없어. 정신승리 하지 마.
살면서 그런 폭력적인 압박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무엇이든 거저 준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무언가 공들여 선택해야 한다면, 애써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택하고 싶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만큼의 에너지만 써가면서.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만 원하면서 사는 삶.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