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미드나잇>
난 널 패키지로 수용했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건 실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예술이라서, 부족한 나로서는 아마 평생 풀지 못할 문제일 것이다. 연식에 따라 누구나 각자의 경험치가 있고, 나름의 답이 있겠지만 그 누군가의 진리마저도 어디에서나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잘 맞아떨어지는가 싶으면 어긋나고, 다시 그럴듯한 방법을 동원해 보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궁리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론'류의 책을 자주 읽었다. 책을 읽고 아주 사소한 것을 바꿨을 뿐인데도, 그 효과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원리를 깨닫고 숙달하면, 누구든 구워삶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도 했다. 세련된 기술로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영리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술로 대하는 순간, 상대방도 딱 그 정도의 마음만 열어주었다. 영혼 없는 관계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껍데기로 남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방을 그저 이해하고 싶었다. 세상의 나쁜 개가 없듯이, 금쪽이의 문제가 보통 부모에 있듯이, 사람의 행동에는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해 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가급적 많은 것을 진솔하게 알려고 노력한다. 내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기보다는, 나의 미숙함과 거친면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깊은 이해, 요즘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수용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의 클라이맥스는 중년의 부부가 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호텔에서 심하게 다투는 부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적 만남과 재회의 역사마저도 부정하면서, 사랑의 종지부를 찍고야 말겠다는 듯 거친 말을 주고받는다.
"난 널 패키지로 수용했어!"
싸움 도중 제시의 말이다. 사실 낭만적인 장면은 아니고, 저 이후로 거지 같은 말을 내뱉다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셀린느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셀린느라는 이름으로 끌어안았다는 말. 사랑하는 사람 그대로를 수용했다는 말은 부부싸움 중에서도 내 가슴을 잠깐 뛰게 했다.
나는 언젠가는 상대방을 수용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해를 동원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존재 그 자체로 수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잔인한 이해관계의 세상에서, 혐오를 유발하는 미디어의 홍수에서, 스트레스가 충돌하는 생업의 현장에서 그게 가능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일어서려다 넘어지는 파도처럼, 매번 실패를 거듭하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