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덜리스>
나도 알지만... 내 아들이었잖아
영화 <러덜리스>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6명의 학우를 죽이고 자살한 아들의 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가족이 주인공인 이야기. 나에게는 이 작품이 무척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영화 속 어떤 장면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 아들의 과거와 관련된 문제로 '샘'(빌리 크루덥)은 큰 곤란을 겪는다. 경찰서에 잠시 구금되었다가, 친하게 지내던 악기점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차를 얻어 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실은 과거의 총기난사범이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고백한다. '샘'은 얼마 뒤 공연에서 부를 노래가 사실 아들이 작곡한 노래라는 것도 알려준다. ‘남의 집 아들 딸을 자네 애가 죽였어.’ 악기점 사장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개한다. 그러자 그가 조용히 내뱉는 말,
"나도 알지만... 내 아들이었잖아." (I know... But... He was my son...)
그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변명하지 않는다. '우리 애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래요.'라거나 '원래 심성은 착한데 우울증이 심했어요.'라거나, '우리 애를 왕따 시킨 애들이 더 나빠요'라는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고 그냥 죽은 듯이 지낸다. 그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빠로서 그저 아들을 가여워한다. 그는 아들이 완벽한 악인으로 죽어서 아무에게도 추모받지 못해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혼자 남아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그의 잘못된 행동까지 옹호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러덜리스의 주인공이 아들의 살인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죽음을 슬퍼하듯이. 이병헌의 연기를 좋아하는 것이 그의 과거 불륜까지 옹호하는 일이 아니며, 쳇 베이커의 연주를 좋아하는 것이 그의 마약 투약까지 옹호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과오는 과오대로 인정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선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약 투약 여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흥업소에 출입하고, 부적절한 대화(혹은 관계)를 나눈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마약을 했든, 바람을 피웠든. 그것과 별개로 나는 배우 이선균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있다.
그의 죽음을 두고서 사람들의 이런저런 평가가 갈리는 동안, 나는 이선균을 비난하는 모든 여론을 제쳐 두고 내가 느끼는 바 대로 슬퍼하기로 했다. 흠결이 있는 것을 알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였으니까.
나는 인간 이선균에 대해서 모른다. 그가 출연한 예능이나 인터뷰를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그를 거의 연기로만 만났다. 나에게 이선균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하루아침에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작품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좋아하게 됐다.
아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처절한 슬픔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때에나 지금이나 나는 마음이 정말 무겁다. 무르익은 그의 연기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화차>에서, <옥희의 영화>에서, <끝까지 간다>에서, <우리 선희>에서, <기생충>에서, <킬링 로맨스>에서, <잠>에서… 출연한 여러 작품 속에서. 그의 한계 없는 스펙트럼은 정말 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