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Feb 28. 2024

아버지, 사과하세요

영화 <세자매>

영화; 세자매(2021)
아버지, 사과하세요

어린시절, 아버지의 '퇴근'은 나에게 '술'이나 '다툼'같은 단어와 동의어처럼 이해되었다. 사업하던 아버지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삐걱대며 들어오셨고, 그 이후로는 거의 고성이 오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 나갈 데도 없이, 그냥 몸을 둥그렇게 말고 그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부모님의 악쓰는 소리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싸움의 이유는 거의 돈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부모님 스스로도 왜 싸우고 있는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싸움이 싸움을 낳고, 상처가 상처를 낳는. 악순환의 반복은 참 오래도 지속되었다.


잘못한 바 없이 그 갈등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랐기에. 나는 가끔은 이해받고 싶었다. 사과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례를 보아도. 부모는 자식에게 사과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쩔 도리가 있나.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극복할 수밖에.


부모가 사과하지 않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누군가에게 심대한 고통을 가하는 사람은 보통 그 자신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괴로움에 허우적대고 있으니, 그 허우적으로 상처받는 누군가의 아픔을 가늠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라났다. 부모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한편, 상처를 떠안으면서. 소소한 행복과 특별한 불행을 동시에 느끼면서. 지속적인 불화와 가난 속에서.


영화 <세자매>의 마지막, 맏딸 '미연'(문소리)은 거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내지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상처를 평생 누르며 살다가 어느 계기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아버지, 사과하세요. 목사님한테 말고요. 우리한테. 어? 우리한테 사과하시라고요.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딸 '이정'(임지호)이 엄마 '수경'(양말복)에게, 엉엉 울면서 무릎을 꿇고 말한다. "엄마,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사과 한 번만 해줘."


그러나, <세자매>의 '미연'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이정'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끝내 사과받지 못한다. 영화에서마저도 자식은 부모에게 사과받기 쉽지 않다. 어떻게 할까? 어쩔 도리가 있나.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극복할 수밖에.


가끔은 무력하게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린다. 그 아이를 안고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고 싶어진다. 아주 먼 데로, 아무런 다툼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