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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06. 2024

더러운 강이군/그래도 아름다워

영화 <아사코>

영화: 아사코(2019)
더러운 강이군
그래도 아름다워


슬픔, 두려움, 외로움, 부끄러움, 우울, 아픔, 이별, 배신...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사는 동안 무수히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 혹은 경험들. 이런 것들은 죽는 날까지 가급적 피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느끼며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내 몫의 슬픔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면서 살든 끊임없이 슬프고, 두렵고, 외롭고, 부끄럽고, 우울하고, 아프게 된다니.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정해진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것처럼, 나도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만 준비된 하강을 빠짐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평생 단 한 번의 괴로움도 없이 살다 죽는 사람을 상상해 볼까. 아주 어린 날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한 번도 아프지 않으며, 한 번도 이별이나 배신 같은 사건을 겪는 바 없이. 기쁨과 즐거움만을 느끼면서, 첫사랑과 해로하면서, 그렇게 삶을 누리다가 죽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그런 삶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완벽하게 이상적인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 볼수록, 부럽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불쾌할 뿐이다. 평생 순조롭게 돌아가는 삶이라는 것은 애초 논리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아사코>에서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자신의 남자친구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배신하고 전 애인에게로 훌쩍 떠났다가 허탈하게 돌아온다. '료헤이'는 그녀가 몹시 밉지만 여전히 사랑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더러운 강이군"


영화의 마지막, 아사코와 료헤이는 비가 와서 불어난 바람에 유속이 빨라지고 흙탕물로 흐르는 강물을 함께 바라본다. 료헤이는 그런 강물이 싫다.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더럽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사코와의 사랑과 자신의 인생이, 맑은 시냇물이 아니라 비 온 뒤의 흙탕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흙탕물과 같이 아름다움과 추함을, 기쁨과 슬픔을, 행복과 괴로움을 덩달아 담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괴로움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그런 흐름 속에 던져진 존재다. 그러나 얄미운 삶의 질곡마저도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것이기에.


아사코는 그렇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다. 강물, 더럽지만 그래도 참 아름답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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