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Jan 17. 2024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2018)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우리가 결국 예외 없이 죽는다는 사실은 너무 중요한 나머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진다. 나는 자주 그 사실을 떠올린다.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두려움을 소환해서 일상의 많은 갈등을 하찮게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즐거운 순간마다 더 깊은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 괜히 곱씹어 보기도 한다.


'죽음'이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면, '삶'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삶은 한 번뿐이고, 한 번뿐이라는 건 삶이 모두에게 처음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뭘 제대로 못하고 실수하며 살아도 괜찮겠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처음부터 잘한 것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스키도 한 번에 탈 수 없었고, 글쓰기는 수백 번을 하면서도 아직도 엉망이고, 기타 코드도 한 번에 잡지 못했다. 첫 연애도 우당탕탕이었고, 대학교에서의 첫 발표도 말 더듬느라 정신 없었고, 군대에서 첫 사격도 그럭저럭. 교생 실습에서의 첫 수업도 잔뜩 긴장한 채로, 알바건 직장이건 일을 배울 때도 언제나 실수 연발이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첫걸음마도 당연히, 당연히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처음 사는 인생을 실수 없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비유하자면, 인생은 Ctrl+Z를 쓸 수 없고 모든 동작이 자동으로 저장되며 되돌릴 수 없는 조건에서 2000장짜리 PPT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발표자료를 어떻게 만드나. 오타가 연발하고, 이미지 크기는 제각각에다가, 순서도 내용도 뒤죽박죽일 것이다.


한 번도 수정하지 않고 내버린 발표자료처럼,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부끄럽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흑역사를 남기며 살아갈지 생각하면 아득하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삶이 한 번뿐이라는 걸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언가 안심이 된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예전에는 이 대사가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느끼는 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라."처럼 들렸다. 실제로 감독의 의도도 그런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에게는 앞서 설명한 취지의 의미가 더해졌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니, 매끄럽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는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할 때마다 이 대사를 염불처럼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