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몽마르트 파파>
그리고 싶은 감정이 있어
세상이 존재하는 데에 이유가 없고, 우리가 태어난 것에도 이유가 없고, 우리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우리는 왜 살고 있을까? 내 생각에 우리는 예술을 하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정확히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산다. 예술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의미 있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수단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표현하는 일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자체로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실용성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서 돈으로 바꿈으로써, 삶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잊게 된다. 내가 나를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관성에 따라 입고, 먹고, 자게 된다. 자기를 표현하는 일에 소홀해서,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도 잊게 된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들이 미술 교사로 정년퇴임한 아버지의 여행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버지는 프랑스 파리의 거리 화가에 도전하면서 1점이라도 그림을 팔아보려 한다.
아버지가 거리 화가에 데뷔하는 첫날, 얄궂게도 자꾸만 비가 내린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비쯤은 개의치 않고 우산을 쓴 채로 어느 첨탑을 계속 그린다. 잠깐 접었다가 나중에 그리라는 부인의 만류에도 끄떡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내뱉는 단호한 어투의 말씀.
"그리고 싶은 감정이 있어."
그리고 싶은 '장면'이 아니라, 그리고 싶은 '감정'이라니! 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였다. 삶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였다.
나는 글을 왜 쓰나, 작가가 되려고 쓰거나 돈을 벌려고 쓰지는 않는다. 작가가 될 수도 있고, 돈을 벌 수도 있지만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살고, 쓰고 싶은 감정이 있어서 쓴다. 2020년의 어느 날. 충무로 대한극장을 나오면서 중요한 답을 하나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