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라면 단연 항복문서를 칸에게 보낼지 말지를 두고 상헌과 명길이 논쟁하는 대목일 것이다.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이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상헌(김윤식)과, 치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는 편을 택해야 한다는 명길(이병헌)은 각자의 충심(衷心)으로 열변을 토한다.
상헌: 전하께서는 명길의 문서를 두 손에 받쳐들고 칸 앞에 엎드리시겠사옵니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라 명한다면 칸에게 술을 따라 올리시겠사옵니까!
명길: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살다보면 지극히 옳은 말을 상대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 말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거나, 치명적인 손해를 야기할 것이 분명하더라도 함부로 논파해서는 안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합리를 따져야 하는 자리에서 누가 누가 더 정의롭고 착한지를 대결하는 모양새로 대화가 흘러갈 때. 나는 엎드려 소리치는 명길이 되는 기분이다. ‘지극히 아름답고 옳은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텐데요.’ 속으로 중얼거린다.
강경한 외교만을 말하는 보수주의자를 보면서, 복지정책과 예산을 대폭 늘리자는 진보주의자를 보면서, 공장형 축산을 즉시 폐지하자는 비건 운동가를 보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끝없이 도전하라고 말하는 동기부여 강연자를 보면서. 나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누고, 돕고, 지지하고, 화해하고, 협력하자는 아름다운 말들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갸우뚱하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라면. 그걸 진작할 수 있었다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나이 들어 가면서 더 실감하게 된다.
나는 때로는 침묵하는 외교를 좋아한다. 복지 예산을 동결하거나 수혜 대상을 줄인다는 소식이 들리면 누군가의 용기있는 결단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인도적으로 소나 돼지를 도살하려는 노력을 존중한다. 명과 암을 명확히 설명하는 강연에 주목한다. 나누고, 돕고, 지지하고, 화해하고, 협력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나름대로 타협하다 지치는 모습을 사랑한다.
순전히 나의 취향이 그렇다. 나는 언제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는 결정에 매력을 느꼈다. 체 게바라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나.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서’ 라고. 나도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