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Howl-!
모든 관계가 지긋지긋해질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사회성을 발휘해 보지만 어떤 날에는 타인을 참아내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타인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름대로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그저 누워만 있어도 기초대사량만큼 칼로리가 소모되듯이, 타인과 어떤 공간을 가만히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에너지가 든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을 때면 가만히 앉아서 타인이 아무도 없는,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을 떠올려 본다. 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로봇이 모든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세상.
매일 크루즈선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시고, 내 마음대로 승마와 골프를 즐기고, 디즈니랜드를 줄도 안 서고 이용하고, 산해진미를 끼니마다 먹고, 마사지를 받고, 아이맥스 영화관 정중앙에서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뿐인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는 행복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그래비티>의 주인공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지구에서 불의의 사고로 4살 배기 딸을 잃고, 아무하고도 접촉하고 싶지 않아서 우주로 떠나온 사람이다. "우주에 와서 제일 좋은 게 뭐야?" 동료가 묻자 라이언 스톤은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고요함이요."
그런데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일관하던 라이온 스톤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변화한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동안, 자신이 사실은 외따로 떨어져 살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구와 가까워지며 우주선이 위태롭게 덜컹이는 순간, 전파의 교란과 함께 온갖 잡음이 라디오에서 섞여 나온다. 우주의 고요함을 좋아했던 라이언 스톤은 그 시끄럽고 복잡한 소음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지며 활기를 되찾는다. 시베리아의 '아닌강'이라는 외국인과 교신하게 된다. 둘은 언어가 달라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들리는 늑대소리를 따라 하며 교감한다. "아우(Howl)-!! 아우(Howl)-!!" 목놓아 소리친다.
늑대의 하울링은 집단의 커뮤니케이션. 그들이 본능처럼 교감하듯이, 우리도 혼자서는 지낼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노래이고 타인과 공명하면서 완성되는 존재라는 걸 <그래비티>를 볼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