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힘든 당신에게
만남이 영원하지 않듯 이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헤어진 애인과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다시 만난다면 그것도 일종의 새로운 만남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이별은 영원하지 않다.
이 이별의 상황은, 영원하고 싶어도 영원할 수 없다. 당신은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별도 아슬아슬해지는 것 같지 않나.
나는 이제 영원히 사랑 같은 거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
적어도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스무 살 때 같은 과 같은 학번 동기를 좋아했다.
아주 귀엽고 예쁜 친구였다.
160cm에 45kg의 그 애는 정말 일년내내 몸무게가 단 1kg 도 변하지 않는 아이였고 나는 일년내내 그 친구를 짝사랑하면서 지켜보았다. 인공위성처럼 주위를 맴맴 돌았다. 그 친구를 어찌나 쳐다봤던지, 나는 160cm의 45kg의 여자가 어떤 체형을 가지고 있는지 아예 눈으로 외워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여자를 보면 머릿속으로 가늠할 수 있다. 그 친구를 기준으로 키를 조금씩 늘이고, 몸무게를 기준에서부터 조금씩 더하거나 빼서 키나 몸무게를 거의 정확히 맞출 수 있게 된 거다.
일 년 정도 짝사랑하다가, 결국 접었는데. 마음을 접기로 한 그날 외로운 자취방에서, 혼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다가 이런 가사를 즉흥으로 썼다.
너도 누굴 사랑하게 되겠지.
내가 널 사랑한 것처럼.
나도 다른 누굴 사랑하겠지.
널 만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해보면 꼭 너여야만 했을까.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너라는 사람의 존재조차 모르고
다른 사람 사랑했을 것 같아.
그때 당시 나는 내 사랑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네가 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서 만나지 못했다면 너라는 사람은 평생 알지도 못했을 거고, 다른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을 거라고. 그렇게 결론 지었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 주위의 여자들 중 조금 나은 사람일 뿐이었다고.
사실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너라는 사람을 능가하는 누군가가 나타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심 찔리고, 부끄러워 했었는데...
나는 너를 마음에서 날려보내고 몇 번의 연애를 더했다. 그것도 그냥 연애 말고 진짜 사랑을 했다. 그 애 이후의 몇 명의 소중한 애인들은 나의 인생을 완전히 지배했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댔다. 그리고 정말 자연재해같은 이별또한 겪게 되었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반복되지 않을까.
(하지만 결코 이별을 당연시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이별할 수 있으니 더 깊이 사랑하고 후회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
사랑할 때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한 것처럼,
단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작년, 가장 최근의 이별을 겪으면서 너무나 힘든 와중에도 나름대로의 확신을
한 구석에, 가지고 있었다.
정말 좋은 연애였고, 정말 특별했지만, 정말 평범하고. 흔했던, 정말 일상적인 연애였다고.
만날 땐 유일했고, 헤어진 후엔 별 다를 것이 없는 연애였다고.
그래서 아마 나는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가끔 수 백명의 여자와 (혹은 남자와) 만나보았다는 자칭 연애 전문가들을 보면서 나는 ‘연애 전문가가 아니라, 이별 전문가겠지.’ 그런 냉소를 보냈었다.
그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별과 사랑이라는 게 맞닿아있는 건 분명하니, 잘 이별하는 게 곧 잘 사랑하는 거라는 깨달음을 얻게도 되었다.
그래서 이별과 연애했다. 이별과도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서, 나는 그 이별의 감정을 소중히 대하게 되었다. 얼마나 힘든지, 어떤 기분인지 이제 한동안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음미하다시피 아파했다. 외로워했다. 글을 썼다.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렇게 음미하는데도 흐려지니까 나름대로 아쉬웠다.
이별과 연애하다보면 이별과도 이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게 나의 결론이다.
그리고 많은 이별과, 그 아픔이 사랑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줄 테니까. 앞으로 더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고도 확신한다.
이 밤. 어두운 이불 속 내가 있는 시간. 이별이 힘든 당신에게. 나는 다시 한번 주제넘은 글로 감히 제안해보는 것이다. 이별과 연애하자고. 그렇게 열심히 열렬히 연애하다가 막을 수 없는 이별과의 이별을 맞이하자고. 이게 적당한 위로의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