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 사랑에 대한 산만한 생각들.

by 서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고 있고,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사랑을 했다는 건 사실 별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난 사랑들을 회상하고, 다가올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 할 그 사랑이라는 문제풀이 때문에 살고있기 때문일까.


사랑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래서 사실 연애가 결혼으로 완성되지 못하더라도 실패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그 매 순간에 대한 수식어이지. 어떤 형식적인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 혹은 결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이라는 과정은 대체로 즐겁고, 아름답지만. 사실 그 이상적인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서 깨어지는 수많은 것들. 희생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가끔은 기쁨과 슬픔이 격렬하게 부딪히다가 행복의 적자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화 같은 사랑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영화 속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치열한 사랑의 과정 속에서 다음의 두가지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 사랑을 하면서 완전히 진실해질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건 득일까 독일까?

- 낭만이 깨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인가? 낭만이 깨지지 않은 사랑은 사랑인가?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한계 없이 내밀해진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가까워지고. 거의 대부분의 것을 인정하고 납득하는 단계에 이른다. 가장 개인적인, 이를테면 성적취향이라든가. 식습관, 잠버릇같은 것들에서부터 가장 최신화 된 상대방의 정보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어서 연애상대자는 적어도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많은 것을 숨기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가장 가까우면서도 끝까지 숨겨야하는 많은 것들을 아주 필사적으로 숨겨내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의 어두운 과거. 혹은 실수들. 음란하고 비합법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전혀 무관하다는 듯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에 대해 실망스러운 점들을 대하면서 완벽하게 솔직해지지 못한다. ‘자기는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는 너무 멍청해.’ 같은 수준의 실망도 말하기는 아주 꺼려지겠지만, 그런 단계를 한참이나 뛰어넘어 대화로 풀 수 없는 실망들에 대해서 우리는 끝까지 정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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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어질 때, 깊어진 만큼 우리가 계속 진실해질 수 있다면 더욱 숭고하고 완벽한 사랑에도 가까워질까?

서로의 이전 연애경험이나, 가정사, 학창시절에 대해 꽤나 솔직해졌을 때 연애가 깨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고 듣는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런 걸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나로서는 그런 점이 내내 찝찝했다.


완벽하게 진실하지 못한 마음으로, 완벽한 사랑을 해낼 수 있을까. 결국 사랑이라는 것도 적당히 융통성이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가 늘 외치는 그 절대적인 가치가 조금은 퇴색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종종 든다.


*


시작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한 드는 마음은. 낭만으로 시작된 사랑이 그 낭만을 많이 잃어버렸을 때. 처음과 분명히 다른 성격의 감정이나 관계로 변모했을 텐데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아함이다.


말하자면, 사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대하게 묶는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뜨거운 사랑과, 익숙한 사랑과, 당연해진 사랑과, 이해하는 사랑과, 배려하는 사랑 등등... 사랑에 무수한 성격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스무살의 뜨거운 연애로 결혼한 부부가 칠십이 되었을 때. 아직 둘이 사랑을 말한다고 해도 분명히 그 감정의 색깔과 무게와 농도와 향기가 분명히 다를 것이 명백한데,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걸 설명해야 한다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어떤 가족적인 단계의 너무나 평온하고 당연해진 안정된 사랑의 감정을 ‘무렴(아무 뜻없이 임의로 만들어보자면)’ 이라 부르게 되면.


그럼 그 부부도 ‘우리 무렴하는 사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테고 그걸 듣는 사람들도 ‘아, 무렴하시는 군, 보기 좋으셔’라고 대답하기 좋을 텐데.


사실 그렇게 되면, 사랑이 언제부터 무렴으로 바뀌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지는 또다른 문제도 생긴다. 어느날 배우자가, ‘우리 올해부터는 사랑보다는 무렴에 가까워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조금 낯설기도 하다.


*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모호하고, 포괄적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외쳐대는 우리네 세상이 때로, 아니 사실은 꽤 자주. 얄궂고, 얄밉고, 철없어 보인다.


그 수많은 사랑들을 사랑이라 부르니, 사랑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한 시기마다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가싶다.


사랑은 늘 행복하고, 낭만적인 거라는데, 아픔도 치유하고, 외롭지 않게 되는 거라는데, 아름답고 나를 늘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거라는데


왜,


왜 난 그렇지 않지? 사랑이 아닌 걸까? 지금의 나는?


모든 연애는 그렇게 깨지는 것 같다.


가장 최근까지도 연애를 실패한 사람으로써, 몇 달 동안 사랑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그렸다가, 지우면서, 참 많은 생각으로 공백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인생이 늘 행복할 수 없듯. 사랑도 늘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이 늘 즐거울 수 없으면, 인생이라는 그릇에 담긴 사랑도 늘 즐거울 수 없다. 빙빙돌아 끝내 가닿은 이런 결론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건데, 사랑을 하면서 이런 욕심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나도 그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은 그런게 아닌데 말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도 같다. 가끔 와 닿는 가사가 귀에 닿으면서 심장을 철렁하게도 하고, 기가 막힌 멜로디로 모든 동작을 멈추게 하기도 하지만, 늘 인상 깊지도, 깊을 수도 없는 배경음악. 하지만 늘 와닿는 감동으로 나를 채우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도 그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것.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이 되지 않아도,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


음악없는 카페를 상상할 수 없듯.

사랑없는 인생이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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