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을 대하는 두 가지 관점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요순시대가 있다. 절친한 나의 후배A는 동아리 활동에서 만났던 연하의 남자친구B와 꽤 달달한 연애를 했는데, 1년도 못가서 안타깝게 헤어지고 말았다. 잘생긴데다가 자신감 넘치고 익살스럽기까지 했던 그 남자애는 이른바 비글미가 넘치는 아이였다.
‘누나- 누나 하면서 귀엽게 따르더니 때로는 박력도 있었다.’고 A는 차이고 나서도 한동안 못 잊고 시름시름 앓았다.
후배A도 귀엽고 예쁜 아이라서 늘상 인기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연락을 했는데 그때마다 그 녀석의 연애사업 근황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대외활동을 하든지 호감표현을 하는 남자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재밌었던 건 A와 썸을 타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연하였다는 점이다. A가 흘리는 말들을 나름대로 조합해보면 다가온 남자들은 동갑이나 연상이 더 많았는데, 연하 쪽에만 마음이 가는 거였다. 그녀는 그 모든 연하의 남자들을 B와 얼마나 닮았느냐로 판단하고 있었고, 당연히 오래가지 않아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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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양은 서양에게 세계의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는가, 뭐 그런 내용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장황한 내용이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상적인 세상을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서양을 보세요. 콜럼버스, 신대륙을 찾으러 떠나죠? 사람들 막 투자하잖아요. 배 띄우고. 연금술로 막 금 만들려고 하고. 이미 옛날부터 논문 쓰고, 과학 실험하고, 호기심이 많다고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 발견하려고 엄청 노력해요. 그런걸 보면 서구의 이상세계는 미래에 있어요.
근데 동양은 어떻죠? 동양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과거에 있는 거예요. 요순시대라고 하잖아요. 신라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요순시대를 완성된 세계로 봐요. 자꾸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말한다고요. 그러니까 미래를 놓친 거예요. 내일보다 어제가 더 좋았다고 말하니까, 가장 아름다웠던 그때로 돌아가자고 말하니까,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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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친한 내 친구 Y는 신입생 때부터 예뻤다. 그 친구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가슴도 엄청나게 컸고, 애교도 있었다. 이미 스무 살 무렵부터 남자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훤히 알고 있던 친구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Y가 가끔 코맹맹한 소리로 ‘서댐아 담배 피우러 가자.’고 말하면 거절도 못하고(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따라 나갔다. 담배 피우는 Y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남자들이 그녀와 나를 흘깃 보며 짐짓 부러운 표정을 하고서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누었다. Y의 얼굴과 몸매에 대해서 얘기하고 쟤는 남자친구인가? 하는 말을 했을 것이었다.
아무튼 Y는 대학교 입학과 거의 동시에 부학회장 형을 만났다가 몇 달 만에 헤어진 것을 시작으로 정말 릴레이처럼 연애를 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가 만난 남자는 내가 아는 것만 20명이 넘는다. Y는 자신의 연애경험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그리 숨기지도 않았다. 나는 이별 한 번에 꽤나 마음이 아픈데 쟤는 어째서 20명을 넘게 만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늘 궁금했다. 진심으로 사랑을 안 하나? 그런 편견을 가진 적도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Y는 남자를 마냥 이용해먹는다든가 자기 멋대로 쥐고 흔드는 타입도 아니었다. 도시락도 싸주고, 돈 없는 남자친구를 위해 데이트비용을 다 대기도 하고, 공부하는 남자친구를 뒷바라지하며 성심껏 응원하고 용기도 주는 등 매 연애와 만남에 최선을 다했다. 차이기도하고 차기도 했지만 대체로 Y는 이별을 금세 극복하고 새로운 남자들을 만났다.
그 이유를 어느 날 Y와 술 한 잔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그녀는 완벽한 콜럼버스형의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지난 연애의 상대자는 개차반이거나, 진상이거나, 어딘가 아쉬운 흠이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이상적인 연인이 미래에 있다고 믿었고, 자신이 그런 사람을 만나리라는 확신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Y는 이별해도 짧은 시간동안 훌훌 털고 신대륙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그저 사랑에 대한 관점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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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별과 연애하기’라는 매거진은 이별의 후폭풍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온전히 음미하고 파고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되었다. 글을 쓰면서 적지 않은 수의 여자들과 썸이 있었고, 데이트를 했지만 연애를 다시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나또한 콜럼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사랑의 요순시대가 있었으므로, 누구를 만나든 자꾸 그때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의 요순시대에 상대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사랑할 땐 이유가 없다가 헤어질 때는 이유가 덕지덕지 붙는다는 말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반대로 되었다. 결정적인 몇 가지 이유들이 연애를 시작하지 말아야할 강력한 증거로 작용했다. 그래서 결단하지 못했다. 올 초에는 사랑의 관점이 비슷한, 멋진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오래가지 않아 헤어지고 말았다. 서로에게 요순시대가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활활 타기도 전에 불을 끄는 편을 택했다.
브런치에는 생생한 이별의 마음을 담은 글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신대륙을 찾아가는 서구형 콜럼버스가 아니라 요순시대를 잊지 못하는 동양의 선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나와 닮은 그들을 보면서, 잠시 공감어린 탄식에 잠기기도 한다. Y처럼 지난 사랑을 모두 부정하고 힐난하면서 신대륙을 찾아 떠나면 좋으련만, 그게 어려운 사람들의 일부는 여기 모여서 글을 쓴다. 나는 그런 글들을 좋아한다. 꼼꼼히 읽고 같은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해본다. 느껴진다. 조금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 모두에게 태평성대가 오리라고 믿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