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과거에서 여행하던 그때의 너
여자친구가 인도에 간 적이 있었다. 사귄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그 지하철 의자에서도 그녀가 너무 보고싶던 시절이었다.
야속했지만 쿨한 척을 하면서,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 기간은 거의 두 달이었다. 영원처럼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시시각각 너는 나에게 일정을 사진으로, 전화로, 영상통화로 전해주었고 그때마다 나는 너와 동행하는 기분이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인도를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간혹 내가 더 신났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인도도 한국도 아닌 너를 여행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주 보고싶었고, '외롭고 무섭다'며 전화를 해 왔을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거길 왜 가서 그러고 있느냐'고. 내가 그렇게 모진 말을 했었는지 생각만 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막상 인도로 떠나보낸 너는 내 생각보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여자였지만, 하루하루 강해지면서 꿋꿋하고 영리하게 여행을 해 나갔다. 위험한 나라인데다가 음식으로 탈도 많다던데 동행을 때맞춰 잘 구하고, 음식도 잘 가려먹어서 안전하게 돌아온 것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다.
인도는 한국과 세 시간 반의 시차가 있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안다. 그녀와 나는 항상 세 시간 반의 시차를 두고 연락했다. 나는 전자기파의 속도에 감탄했다. 세 시간 반이라는 무시 못할 거리를 실시간으로 이어주는 그 속도.
그 세 시간 반의 거리는 연락하는 내내 몸으로 와닿게 느껴지는 차이였다. 내가 저녁을 먹을 때면 그녀는 해치운 점심이 꺼져 출출해할 시간이 되었고, 그녀가 저녁을 먹을 때면 내가 거의 잠잘 준비를 위해 하루를 정리해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나보다 세 시간 반이나 느린 시간 속에 있는 그녀와, 왜곡없이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그녀는 나의 과거에서 여행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친 과거의 시간에 그녀는 아직 남아서 인도라는 땅을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너는 내 과거에서 여행하는 셈이네.’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시도 한 편 써서 보내주었다. 그녀는 그 시를 좋아했다. 그녀보다 내가 더 그 시를 아꼈지만.
그런 생각이 들고부터 나는 이따금씩 생각이 날 때마다 자기전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건 일종의 자장가였는데, 자취방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남자 동기놈을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세 시간 삼십분 후에 내가 누운 이 시간에 도착하면, 그제서야 그녀에게 이 노래가 들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였다. 나는 쿨쿨 잠들어있어도, 자정이 살짝 넘은 이 시간에 불러 놓은 이 노래는 이 시간에 남아있을 테니까.
그녀가 깨지 않고 푹 자길 바랐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녀가 인도에서 돌아오고 나서 우리는 한참동안 연애를 했다. 남들과는 다른 연애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난 뒤에는 흔한 연애소설이 되어버렸다. 오늘 밤은 문득 그 점이 아쉬워진다. 그런 시간들이 있다.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마음으로 조금 더 잘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 부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