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 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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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

겨울바다에 가고 싶어.

*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단지 그것 뿐 이었다. 그녀의 음성이 내 귓속으로 들어올 때. 겨울바다의 풍경이 눈앞에서 깜박였다. 회색빛 하늘에 규칙적인 파도, 부서지는 파도 거품. 추왁 추왁하는 파도 소리. 젖은 모래와 마른 모래들의 경계. 경계를 지나다니는 코트차림의 남자.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의 말이 그렇게 끝나자마자, 우리는 먹다 남은 커피를 계산대의 점원에게 건네주고 일어섰다.

기차의 덜컹임이 좋았다. 기차는 덜컹이면서 나아간다. 겉으로 보면 매끈한 철길을 지나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덜컹이면서 움직인다. 그러니까 가까이서 보면 덜컹이고 있다. 요동치지 않는 것은 멈춰있는 것뿐이다. 무엇이든 결코 멀리서 보아서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니까. 상상만으로는 안되는 게 있다.

그 덜컹임이 설레는 건 정상적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차는 목적지를 위해서 존재한다. 멈춰있는 기차는 설레지 않는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으로 풍경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동공. 심연에서 뭉개지는 창밖의 풍경이 어쩌면 또렷하게 보일 것도 같았다. 나는 더욱 더 집중해서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

웃으면서 나와 눈을 맞추는 그녀의 얼굴이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 쌍꺼풀이 한쪽 눈에만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왼쪽에서 볼 때와, 오른쪽에서 볼 때가 달랐다. 그녀의 얼굴은 한 쪽에서만 보아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오른쪽 눈썹에 있는 흉터자국과 왼쪽 눈에만 있는 쌍꺼풀 때문이다. 왜 자꾸 쳐다보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도시와 도시의 간격에는 산맥이 외롭게 이어졌다. 깊이나 밀도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슬슬 졸린 걸 보니 시간이 꽤 지난 거 맞지?”

그녀의 말에 핸드폰 화면을 켰다. 시간은 열두시가 다 되어가고 도착시간도 가까워졌다. 괜히 하품이 나왔다. 내 하품에 그녀도 하품을 했다. 하품처럼 웃음도 전염됐다. 옆쪽 창가에 기대 졸던 아저씨가 우리 웃음소리에 깼다. 우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 숙여 미안함을 표했다. 그녀가 내 어깨를 방정맞게 두어 번 때렸다. 나는 찡그리면서 그녀의 팔목을 잡았지만 사실은 아프지 않았다. 그즈음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나왔다. 이번 역은 강릉입니다. 벌써 도착인가봐. 덜컹이는 기차에서 좋아 죽겠다는 듯 제자리 뛰기를 하는 그녀를 앉혔다. 앉아서도 몸을 흔들며 좋아했다. 나는 서서 앉아있는 그녀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누르고 그녀의 몸부림을 멈춘 후에 가볍게 키스했다.

자 내릴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