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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에게 연락이 온 건 3년만이었다. 1000일이라는 시간은, 하루가 천 번 쌓인 시간이라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하루를 천 번이나 쌓아올린 지점에 있구나. 하루씩 천 번을 늙었구나, 천일을 견디면서 각도가 아주 조금 틀어진 총알처럼, 참 많이도 달라졌구나. 천일은 그런 무게였다.
‘루나에서 만나.’
미영의 메시지는 간결했고 천일 후의 나는 여전히 결론부터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당황했다. 훌쩍 떠나버린 건 미영이였고,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당당한 태도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천일을 만났고, 천일동안 떨어졌다. 함께 천일을 늙었다가, 천일만큼 각자 늙어갔다. 20대 후반의 나는 서른을 넘었고,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그녀가 서른에 도달했다.
간간히 SNS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직후 인도를 거쳐 남미를 횡단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는 한 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루나(LUNA)는 그녀와 내가 자주 찾던 대학로의 카페였다. 나와 미영은 늘 그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빙수를 떠먹여주곤 했다. 루나의 테이블은 좁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면서 볼을 꼬집기에도, 머리를 쓰다듬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밥은 늘 새로운 곳에서 먹더라도 카페는 루나만을 이용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도 익숙해진 천일 즈음 우리는 헤어졌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우리는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한 커플이었다. 우리의 연애도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구석에서부터 자라나고, 언제부터인가 정말로 사랑했냐는 듯 귀찮아지고 익숙해졌다. 그녀는 천일쯤 되던 날. 별안간 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이별통보로 받아들였다. 여행 통보가 있고 일주일 뒤 그녀는 인도로 떠났다.
‘오빠. 나 긴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오래오래 돌아오지 않을 거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던 미영의 건조한 말투가 이따금씩 이명처럼 귀에서 울렸다.
흐릿한 상태로의 이별은 그 충격이 세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평상시와 똑같은 기분으로 일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갔다. 핸드폰을 들여다 볼 일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달랐고 그 외에, 세상과 나는 무서우리만치 그대로였다. 다만 정확히 끝맺지 못했다는 찝찝함으로 그 여운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헤어진 다음날의 이상한 기분을 일 년이 넘도록 가진 채 살았다. 차라리 험한 욕과 함께 뺨이라도 한 대 맞는 편이 좋았을까.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덜컥 답장했다. 알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