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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앉던 그 자리. 미영은 먼저 나와 있었다. 생생하던 볼이 아주 미세하게 쳐진 듯한 그녀의 얼굴을 짧지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더 예뻐졌다. 자신을 잘 알고 매력을 부각한 화장, 맵시가 살아난 것은 살이 빠졌기 때문이리라. 한쪽에만 있던 쌍꺼풀이 여전했고, 도톰한 입술을 앙다문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가볍게 웃으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은 경직되었다. 나는 굳은 몸을 이완시키기 위해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 입으로만 살짝 웃었다.
“응. 오랜만이다 오빠.”
그녀는 자연스럽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저런 미소를 지었어야 하는 건데, 눈을 오래마주치지 못하고 나는 괜히 벽지를 한번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은 잘 다녀온 거야? 별일 없었고?”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란 걸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녀의 유일한 행로였으니까.
“별일 없는 여행도 있겠어? 내내 별일이었어.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거라면, 다치지 않았어.”
“그래.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한번 보고 싶었어. 어떻게 지내는지.”
“이렇게 지내. 3년 전하고 비슷하게.”
“비슷하지 않아. 한참이나 늙었는걸. 살도 찌고.”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농담 같은 말투였지만 건조했다. 나도 건조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서른 넘은 남자가 그렇지.”
“오빠가 그런 거지. 멋있는 서른도 많아.”
그녀는 입을 비쭉 내밀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귀여운 모습이어서, 예전 같으면 볼을 꼬집어 주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가리고 뽀뽀를 했을 수도 있다. 루나의 테이블이 가까운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좀 더 먼 테이블이 있었다면, 나의 이 어색한 표정을 들키지 않을 텐데.
“이제 뭘 할 생각이야?”
“제발. 오빠까지 그러지마. 내 인생계획 브리핑하려고 부른 거 아니잖아.”
나도 궁금한 건 아니었다. 다만 버려진 군인처럼 탄창에 질문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대화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는데, 미영에게 정작 궁금했던 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머릿속이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럼 됐어. 넌 알아서 잘하니까 계획이 있겠지.”
그런 채로 대화가 한동안 끊어졌다. 그녀는 한참이나 시선을 내리고 테이블의 주름을 셌다.
그녀가 할 말이 없을 때 테이블을 쳐다보는 것은 나무 결을 따라 주름을 세고 있는 것이다. 연애시절 그래서 나는 그녀가 테이블을 쳐다볼 때면 무언가 말하기 위해 애썼고, 그녀가 쳐다보는 테이블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나를 보게 했다. 할 말이 없을 때는 얼굴을 찡그리고 구겨가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고, 그녀의 표정에서 억지웃음이라도 이끌어냈다.
나는 의식하지도 못한 찰나에 그녀의 눈앞을 손으로 휘휘 저었다. 마치 현재진행형의 연인이 할 법하게 익살스러운 손짓으로.
미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결심한 듯 입을 떼고 내뱉는 그녀의 말은
“나 결혼해.”
세상이 멈추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