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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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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를 보내며.

나는 아마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죽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다. 진정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그것보다 조금 더 많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것보다도 조금 더 많을 거다. 아무튼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게 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다짐과 가장 가까운 마음이다. 새해를 50분 남겨놓은 이 시점에서 나는 죽음을 떠올리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쓴다. 키보드를 두드린다.    

  


2017년은 나에게 참 의미있는 한 해였다. 하고 싶은 것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거의 다 해냈다. 혼자서 제주도로, 정동진으로, 그 외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노래도 여러 개 만들었고, 그 중에 하나는 녹음실에서 음원 작업도 했다. 잘하면 내년에는 몇 개를 모아서 미니 앨범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를 엄청나게 봤고, 일일이 코멘트를 남겼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고 형과 함께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참 좋아하셨다. 진작 하지 못한 효도를 후회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꾸역꾸역 수업을 이수했다. (내년에는 교생실습에도 나가야 한다. 나는 자주 걱정한다.) 학업과 일을 다행히 병행할 수 있었는데, 가르치는 일을 하며 좋은 학생들을 여럿 만났다. 많이 가르쳐주지 못하고 도리어 많이 배웠다. 몇 명의 좋은 여자들을 만났다. 그 중 한 명에게는 과분한 관심과 애정을 받기도 했으나 끝내 사귀게 되진 못했다. 연애라는 행위의 피로감이나 이별의 두려움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던 탓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혹은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더 컸다. 

주짓수를 몇 개월 째 배우고 있는데 남을 마구 폭행하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잠 잘 시간은 좀 줄었지만 꽤 성실하게 다녔다. 거의 매일 밤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많이 걸어 다녔다. 작년엔 이상하게 허약했었는데,(시내버스를 타고 멀미를 할 때는 스스로에게도 조금 놀랐다.) 올해는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브런치에 글을 썼다. (어쩌다가 알게 된 한 두 명의 사람이 있지만,) 여기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때로는 솔직하게도 썼고, 대부분 많은 글에서 나를 조금 미화했다. 현실에서의 나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은데. 가끔은 조금 낭만적인 척도 했다. '알게 뭐야 어차피 진짜 나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 뻔뻔함으로 썼다. 그래도 무언가 써서 남겨놓는다는 것은 의미있고 즐거운 일인 것 같다. 굳이 남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보다 재밌는 것이 또 없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면서, 과거의 나와 대화하듯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글쓰기의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올해 이상으로 더 열심히 살 다짐을 한다. 다양한 곳에 꾸준히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매 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싶다. 올해는 얼추 잘해냈으니 내년에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올 해에게도 감사하다. 2017년이 한 명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정말로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크게 와닿지도 않고 사실 무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행복하기 위해서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꾸 뒤죽박죽이 된다. 행복하자고 시작했던 일이 의무가 되고, 숙제가 되고, 고통이 된다. 모든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다가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용기있게,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면에 놓고 고민해야한다. 올해는 조금 성공적이었고, 다가올 내년에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나쁜 이슈가 많았던 한 해였는데 내년은 조금 더 말랑말랑한 한 해였으면 좋겠다.     


절친한 친구가 고등학교 때 그런 말을 했다. 생각이 많고 진중해서 배울점이 많은 친구였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였는데, 자신의 진로문제로 고민하던 내용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는 해결만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학업문제를 해결하고, 이후에 병역을 해결하고, 취업을 해결하고, 결혼을 해결하고, 자식을 해결하고, 주거를 해결하고, 가정 경제를 해결하고, 노후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어느새 완전히 늙어버려서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것 같다구. 벌써. 난 할아버지가 된 거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거야. 해결만 하다 죽어버리는 거지.”     


난 이 말이 참 인상깊어서 좀처럼 잊지 못하고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친구에게 네가 그런 말을 했었노라고 얘기해주었더니 그 친구는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잊었더라. 나만 오래 고민하고 있었다.  

    

새해에는 해결하는 삶 말고, 행복한 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너무 부럽지 않은 선에서 내 주변의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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