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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9. 2017

종현, 당신은 빛났다.

- 그를 애도하며

나는 음악을 잘 아는 남자다. 사실은, 음악을 잘 아는 남자이고 싶었다. 나같이 음악에 대해 어설픈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 남들에게 젠 체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아이돌 음악을 무시하고 미워하는 일이다.


k-pop이 한국 음악계를 망치고 있어. 깊이라곤 없고 춤추는 데 애를 쓰느라 가창력은 엉망이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하면서 아이돌 자체에 대한 커다란 편견을 가지고 살았다.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무지를 자부심으로 느끼면서 내 이어폰에서는 유명한 팝송만 흘러나오게 됐다.


샤이니를 알게 된 것은 데뷔와 거의 동시였다. SM의 주력 아이돌이었으니 듣지 않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가만히 길을 지나다녀도 들렸다. 누난 너무 예뻐 라든지 산소같은 너의 제목만 봐도 화가 치밀었지만 어쩐지 너무 좋은 멜로디에 남몰래 하루종일 흥얼거리기도 했다.


부드럽고 깊은 온유의 목소리와 거칠게 뻗는 종현의 목소리는 조합이 참 잘 맞았다. 노래들도 천편일률적인 멜로디를 벗어나서 괴기스러울 정도로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됐다.


샤이니 종현은 나에게는 오랫동안 비호감의 어느 영역에 머물러있었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철없는 예고 남학생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과하고 발음도 뭉개져서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왼손잡이는 무대를 지배하는데 완전히 실패해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나도 그 동영상을 보며 픽 하고 비웃음을 터뜨렸었다.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어젠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얼마전 고 김주혁 배우의 죽음처럼 생소했다. 잘생긴 얼굴, 돈, 명예와 인기. 나에겐 죽지않을 이유가 너무나 충분해 보였다. 나의 의아함을 여기 두고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보내달라고 고생했다고 말해달라면서.


나는 평생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고 좋아한 적이 없다.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소녀들에게나 안타까워야할 그의 죽음이 슬프고 마음이 쓰이는 걸까. 알기 어려웠다. 왜 나는 그의 얼굴을 자꾸 떠올릴 수밖에 없는가. 생각해봤다.

 

그러고보니 나는 사실 그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불렀던'혜야'를 연습하려고 백 번도 넘게 반복재생하며 따라불렀던 기억. 군대에서 남자 아이돌만 나오면 경기하다가도 샤이니의 셜록만은 항상 끝까지 무심한 표정으로 감상했던 기억. 한동안 한곡 재생으로 무한 반복하던 이하이의 한숨(이 곡은 종현의 작사.곡 이다.) '산소같은 너'에서 가장 좋아하던 파트도 종현의 차례였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에 이르기까지 나는 종현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의 죽음 이후에 듣는 목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린다. 녹음된 목소리는 영원불변할텐데도 더 멀리서 부르는 것 같이 들린다.


나는 그와 아무런 인연이 없어 고생했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줄수도 없지만 그에게 깊은 애도만은 표할 수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잠깐 침울해하는 것. 그것으로 그를 기린다.

뒤늦게 고백하건대, 나는 그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이제 부디 편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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