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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덕준 Feb 18. 2018

안녕이라는 이름

서덕준


나의 고요를 절개하고 때아닌 비가 내렸다 비는 멎을 생각이 없었기에 당분간 젖은 성냥처럼 살기로 했다 점화되지 않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수성 잉크로 적은 이름이었다 문득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곤 하는 이름 모를 전단지들이 떠올랐다


벌써 벽에 걸린 달력은 몇 장이 뜯겨나가 가벼워졌다 나는 달력이 찢길 때마다 노숙하는 날이 많아졌고 대체 누가 앗아간 건지 나는 더 이상 색이 없게 되었다 팔뚝을 포개고 엎드려 누우면 겹친 부분만 동굴처럼 어두워졌다 


빈 어항엔 물이끼만 가득했지만 나는 밤이 가까워올 때마다 턱을 괴고 어항에 조명을 비추는 일이 많았다 조명에 빛나는 물이끼는 참으로 농롱했고 그것은 나에게 울창한 숲과 같은 존재였다 자칫하다간 이 어항 속으로 투신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이름이 안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가 나를 불러줄 때마다 안녕이라고 해준다면 내가 정말 안녕할 수 있을까 봐

그렇다면 나는 울지 않고 응, 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서덕준, 안녕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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