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목차
1. 책을 읽으며
2. 농담의 의미
3. 농담의 인물해석
책을 읽으며
변질된 가치나 가면이 벗겨진 환상은
똑같이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고,
서로 비슷하게 닮아서
그 둘을 혼동하기보다 더 쉬운 건 없죠.
<<농담>>이란 책의 제목처럼 주인공인 루드비크의 삶은 한마디 농담으로 인해 크게 뒤바뀐다. 루드비크는 짝사랑하는 여학생을 놀리고 싶어 공산주의를 모욕하는 편지를 보낸다. 순전히 농담으로 쓴 편지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벼운 농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결국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당하기에 이른다. 그 후 교화를 시키겠다는 명목 하에 군대에 끌려가 탄광일을 하고 공산주의 훈련을 받게 된다.
재미 삼아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파도를 일으켰다면 누가 믿겠는가? 작가는 루드비크의 삶을 통해 재미 삼아 던진 농담 한마디로도 인생이 크게 뒤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루드비크뿐만 아니라, 루치에 코스트카 등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모순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거대한 세상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한 사람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느꼈다.
무엇이 농담이란 거야?
<<농담>>은 처음 공산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당시 공산주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 후 15년이 흘러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가 더 우세해진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시대가 바뀌자 사람들의 가치관은 서로 엇갈린다. 루드비크를 고통으로 내몰았던 시대는 사라져 버렸고, 자신을 당에서 축출하는데 주축이었던 학생도 이제 더 이상 그때와 같지 않았다. 나는 복수할 대상이 없어진 루드비크를 보며, 그가 느꼈을 허망함에 공감했다.
내 인생의 일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잠시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내가 젊을 시절 겪은 위대한 경험들은 한순간의 반짝임일 뿐이다. 내가 무엇을 겪었든 간에 결국 나 자신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다. 어떤 의미도 없는 것들로 나열된 인생은 가벼운 농담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삶은 필연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농담으로도 운명이라 생각했던 것들에서 멀어진다. 내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필연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취소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운명이라 생각했던 일도 가벼운 농담으로 뭉개질 수 있는 걸까?
한 세계의 역사든 개인의 역사든 마찬가지로 농담과 같이 가볍고 별 거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다. 매 순간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나의 운명을 결정해 나가며,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그제야 더 이상의 선택지가 남지 않은 운명을 맞이할 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루치에와 루드비크]
서로 다른 사랑의 해석으로 엇갈린 시선
루치에와 루드비크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다. 루치에는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고 루드비크는 탄광일을 했다. 루드비크는 서로의 우울함이, 서로를 더 가깝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루치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서도 루치에를 잊지 못하고, 자신이 사랑한 유일한 여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루치에는 달랐다. 루치에는 코스트카에게 루드비크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루치에는 성폭행과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루치에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쳐 신발공장에서 일을 했다. 이런 과거 때문에 루치에는 육체적 사랑은 폭력적이고 불순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드비크는 육체적인 사랑을 원했다. 루드비크가 루치에에게 사랑한다면서 하는 행동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루치에 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그녀를 때리고 억지로 옷을 벗기려 했다.
육체적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인해 둘은 과거를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누구는 애틋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누구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루드비크가 자기의 고통과 욕구에만 몰두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코스트카와 루드비크]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
코스트카는 하나님을 믿었고, 이 때문에 당에서 축출당하게 된다. 루드비크는 자신과 같이 부당한 일을 겪은 코스트카에게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당에서 코스트카를 축출하려고 할 때 그의 편을 들었고, 코스트카에게 취직자리를 소개해주는 등 여러 번 도와준다. 그러나 코스트카는 루드비크를 못마땅해했다. 고맙긴 했지만 가치관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루드비크는 부당함에 저항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코스트카는 부당함을 하나님의 교시라고 생각하고 따랐다. 그는 과거의 일에 매달려 인간에 대한 증오가 뿌리 깊게 박힌 루드비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루치에와 루드비크, 코스트카와 루드비크는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과거와 가치관의 차이는 동일한 상태에서도 다름을 만들어낸다.
자기밖에 놓인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끼인 그런 나이,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보 같은 서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 그렇다, 나는 지난 십오 년 동안 루치에를 예전 나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거울처럼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야기는 루드비크, 코스트카, 헬레나 등의 시점이 서로 맞물리며 전개된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읽다 보면 타인의 마음까지 이해하기란 참 힘들다고 느껴진다. 타인에 대한 이해란 결국 나의 삶의 방식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타인은 미지의 세계와 같기에, 어쩌면 타인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