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룰루 밀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과학자 아버지에게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잔인하리 만치 냉정했다.
존재에는 이유가 없어.
태어난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 신도, 내세도, 운명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사람의 생명은 개미와 다를 바가 없다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대답이었다. 속 뜻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살아라!'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세상은 엔트로피에 의해 질서에서 혼돈의 방향으로 간다. 질서와 안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되고 혼라스러운 상태로 변한다. 룰루 밀러는 그 속에서 삶의 무의미를 느꼈고, 16살 때 자살시도를 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그러다 그녀의 무의미한 인생은 곱슬머리의 그를 만나게 되며 의미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것도 인생에서는 잠깐일 뿐이었다. 곱슬머리와의 연애가 끝나며 다시 혼돈이 찾아왔다. 혼란에 놓인 그녀는, 혼란과 대항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만나게 된다. 과거에 실존했던 그의 삶은 위대했다. 혼란스러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그 분류학자는 지진에 의해 자신이 평생을 받쳐 만들어온 물고기 표본이 모두 부서지더라도 좌절하지 않았다. 밤이고 낮이고 물고기가 마를까 물을 뿌리며 물고기 몸에 이름표를 박았다. 좌절을 모르는 데이비드에 끌린 저자는 그의 삶을, 그의 업적들을 좇으며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찾으려 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존재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우선 느낀 점을 쓰기에 앞서 책을 아직 안 읽었다면 이 글을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전이 있으니 서평을 보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고, 나는 꾹 참고 책을 먼저 읽었다. 그래서 저자와 함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좇을 수 있었다. 그의 모순을 보았을 때, 업적과 더불어 잔인함을 목격했을 때, 그가 이룬 업적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등 놀라움에 연속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삶의 경이로움이 느껴져 페이지를 한참이고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읽는 내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책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물고기 분류학자의 삶을 얘기하며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까? 혹시 물고기는 질서를 의미하는 것일까? 내 의문은 책의 마지막에 달해서야 해소되었다. 말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전혀 다른 다양한 개체들을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은 것뿐이다. 만약 산에 고라니와 토끼, 호랑이가 산다고 하면 이들을 '산고기'라고 하나로 분류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물고기'라고 각기 다른 어류를 하나의 이름으로 분류하며 생긴 오류이다. 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는 그 사물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이비드가 주장한 '우생학'도 존재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짓밟는 계기가 된다. 장애가 있는 사람, 백인이 아닌 사람, 집에 혼자 있는 여자들에게는 '부적합'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들은 정신병원에 갇히거나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다.
이 책은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우주적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아무 가치도 가지지 못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관점으로, 내가 속해있는 집단(가족, 친구들 등등)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들을 웃게 해주는 존재이다. 무의미한 서로가 만나 서로에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를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 내가 이해 못 하고 있는 복잡성에 대해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