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가 그린 '완전한 인간'의 초상
엘리아드의 아름다운 문장 하나: ‘망명자는 누구나 이타카로 되돌아가고 있는 율리시스이다. 모든 생활은 오디세이, 이타카로 가는 길, 중심으로 가는 길의 모사이다. 망명자는 자기 방황의 감춰진 뜻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중심을 향한 입사적 시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마다 자신의 다리와 악으로 집으로 가고 있다.” — 김현, 『행복한 책 읽기』 중에서
미국의 소설가 토머스 울프는 삶의 진리를 응축한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이 짧고도 강렬한 선언은 비단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한때 가졌던 순수한 시절이나 온전한 자아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기, 낯선 타국 땅에서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며 조국과의 단절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의학도이자 문학가였던 이미륵(李彌勒)입니다.
'정규화, 박균'이 공동 저술한 『이미륵 평전』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고향'의 의미를 뛰어넘어, 이미륵의 삶과 문학을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라는 역설적이면서도 애틋한 인간 본연의 그리움을 탐색합니다. 그는 조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한 후, 이역만리에서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 잃어버린 고향을 끊임없이 호출하며 자신만의 내면적인 '고향'을 재구축했습니다. 마치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속 어린 미륵이 순수했던 시절의 고향을 찬란하게 그려냈듯, 그의 문학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상실을 통해 더욱 깊어진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투이자 성찰의 여정입니다.
토머스 울프처럼, 이미륵의 삶 역시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그리움이 녹아든 거대한 자전소설입니다. 이 평전은 고향이 단순히 떠나온 곳이 아니라 우리 안에 흐르는 불멸의 강물임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작가 이미륵을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학생 대상의 슬로 리딩 수업 텍스트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슬로 리딩은 책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읽으며, 글의 문장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저자의 생각을 헤아리는 독서 방법입니다. 당시 수업 텍스트로는 소설, 특히 성장 소설이면서 우리 문화와 역사성이 반영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구사하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고루 갖춘 작품을 고르기 위해 여러모로 고심했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엄마의 말뚝』과 오정희의 『유년의 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두고 고민하다 『엄마의 말뚝』을 선택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압록강은 흐른다』를 다시 읽으며 이미륵 선생님께 깊은 관심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평전까지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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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평전』은 인간, 작가, 애국지사로서 이미륵의 다채로운 면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평전의 부제인 ‘완전한 인간의 초상’이 보여주듯, 그는 단순히 재능 있는 작가를 넘어 삶의 태도와 실천에서 세 가지 차원의 통합적인 이상을 구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 표지에 실린 이미륵의 사진은 단순히 학문에 매진하는 유학생의 모습을 넘어섭니다. 서구의 양복을 입고 검은테 안경 너머로 사색하는 듯한 그의 시선은 현실의 독일이 아닌, 기억 속의 아득한 고향을 향하는 듯합니다. 이는 조국을 잃은 슬픔과 향수를 지성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숙성시키며, 한 명의 작가로 변모해 가던 시점의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의 외면이 독일의 지성이었다면, 그의 내면은 영원한 조선인이었음을 이 흑백의 기록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양 지성의 통합 (학문적 완성) 이미륵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독일로 망명하여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서양 과학의 전문가였습니다. 동시에 뮌헨 대학교에서 동양학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가 서양의 과학적 이성과 동양의 철학적 사상을 모두 깊이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문명을 아우르며 지적인 완성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실천의 완성 (인도주의) 이미륵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는 쿠르트 후버(Kurt Huber) 교수의 가족을 보살핀 일화입니다. 나치 정권에 맞서다 처형당한 친구의 가족을, 연좌제의 위험 속에서도 꿋꿋이 도왔던 그의 행동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숭고한 도덕적 용기와 인간애를 보여줍니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仁)와 용기(義)를 잃지 않고 실천한, 도덕적 완성의 모습을 구현했음을 뜻합니다.
시대적 소명의 완성 (작가이자 애국지사) 그는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에 저항하며 조국 해방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짊어졌습니다. 또한 망명 작가로서 자신의 문학을 통해 한국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서구에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이미륵은 단순히 한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이 아니라, 격동의 시기에 지식인, 작가, 애국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들을 모두 수행하며 개인의 삶과 역사적 소명을 일치시킨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인간의 초상’이라는 수식어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륵의 바른 인성과 올곧은 성품은 위대한 어머니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전을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던 중 3.1 운동 사건으로 수배에 몰린 이미륵은 상해로 도망가야 했지만, 노모를 두고 망설입니다. 이때 어머니는 자식에게 다음과 같이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용기를 내거라. 너는 국경을 무사히 넘어 반드시 유럽에 갈 수 있게 될 게다. 이 어미 걱정은 절대 하지 말거라. 나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 세월은 빨리 지나간단다. 혹여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너무 슬퍼 말거라. 너는 내 생에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제 혼자 네 길을 가거라!"
이 말을 들은 이미륵은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떠났고, 결국 고향으로도 어머니에게로도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일화를 보며 저는 문득 사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가 보낸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 두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옵니다. 한 아들은 조국을 떠났고, 또 다른 아들은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찌도 이리 위대한지요. 위대한 어머니 아래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두 어머니의 가르침은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정신적 배경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두 어머니들은 아들들에게 단순히 잘 살기를 바라는 대신, 개인의 삶이 아닌 시대적 소명을 짊어지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미륵은 이 가르침 덕분에 독일에서 쿠르트 후버 교수 가족을 돕는 인도주의적 용기를 실천하며 '완전한 인간의 초상'으로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륵 평전을 읽어가며 그의 삶이 여러 관계와 운명처럼 얽혀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1919년 3.1운동 주동자로 수배자가 된 이미륵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봉근 선생의 도움으로 망명길에 올라 독일 뮌헨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의학도이자 문학가로서의 삶을 살았죠.
그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독일 피퍼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독일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큰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59년, 뮌헨에 유학 중이던 전혜린이 이미륵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의 번역으로 『압록강은 흐른다』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비로소 한국 독자들에게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미륵 선생님의 삶은 이렇게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조소앙과의 정신적 교류, 망명을 도운 안봉근, 그리고 나치의 저항 세력이었던 '백장미단'의 정신적 지주 쿠르트 후버 교수와의 스승-제자 관계를 넘어선 깊은 우정까지.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인류애와 학문적 열정을 잃지 않고, 사후 전혜린을 통해 문화적인 연결망을 형성하며 계속해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미륵과의 만남은 제게 '운명적인 끌림'이었습니다. 그는 물리적인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문학을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끊임없이 재구축하며 '완전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조용하지만 강인한 내면의 힘과 소명 의식은 마치 제가 찾아 헤매던 북극성 같았습니다. 엘리아데의 말처럼 삶이 '중심으로 가는 길'이라면, 이미륵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이타카'를 찾은 진정한 율리시스였습니다. 이 가을이 가기 전, 『압록강은 흐른다』를 통해 그의 울림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