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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가앤필 Jan 06. 2025

이런 회원 처음이래요

처음엔 누구나 열심히 할 수 있다

아무에게나 1대 1 트레이닝을 받을 순 없었다. 


트레이너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난 내가 더 걱정이었으므로. 은근히 까다로운 성향이라 누군가와 1대 1로 50분 수업을 잘 보낸다는 것은 약간의 미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나에겐 트레이너의 실력 이상으로 사람의 성향이 너무 중요했다. 평소엔 까칠함을 드러내지 않아 유연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지만 내가 보는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예민하고 세심해서 민감한 편이다.  


남들보다 주변 환경이 더 많이 보이고 그래서 더 잘 느껴지는 사람이다. 트레이너를 만나기 전부터 미리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 1대 1로 트레이닝을 받으며 근력 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떤 성향의 트레이너가 나에게 맞을까? 하고...


이런 트레이너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다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남자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자 선생님이면 분명 불편할 테니 불편함을 빌미로 동작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하고 돌아온 나에게 운동이 세상의 중심인양 너무 부담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오늘 하루 내 몸의 상태에 집중하는 동작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가를 13년 왔지만 헬스장에서 하는 근력운동은 전혀 다른 종목이니 초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알려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두루두루 개인적 친분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사적인 질문은 가능한 자제하는 담백한 관계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나만의 기준과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이었을까? 


집 앞 헬스장에서 30분 맛보기 수업을 해 줬던 트레이너쌤을 보면서 '어~ 내가 원하는 성향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으신데? 이 쌤에게라면 왠지 1대 1 PT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돌리며 하늘로 쭉쭉 뻗는 별것 아닌 듯 느껴지는 스트레칭 동작에도 지금 왜 이 동작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고 이 동작을 통해 느껴야 할 몸의 자극점 위치를 손가락으로 살짝 터치해 주니 기존에 내가 해 오던 운동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각각 동작의 효과에 대해도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방식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믿고 가 보기로 했다. 


왠지 이 분과 함께라면 나의 허리를 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PT 수업 3회 차 정도가 되었을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레이너 쌤에게 톡을 보냈다. 


'요가를 취미로 10년 넘게 했지만 1대 1 트레이닝은 차원이 다르네요. 20명 넘는 요가수업에서는 웬만큼 자세를 잡는 저에게 선생님이 거의 올 일이 없었거든요. 이렇게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주시니 넘 좋네요. 이래서 제가 1대 1 트레이닝을 해 보고 싶었나 봅니다. 내 몸의 사용법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소한 근육들을 느끼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평소 문자나 톡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보내는 장문의 톡이다 싶어 살짝 고민하며 보내던 참이었다. 트레이너 쌤에게 이렇게 답장이 왔다.


"제 트레이너 인생에서 이렇게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회원님은 처음이세요. 회원님께서 많은 경험을 하셨고 운동도 많이 접해보셨겠지만 더 많은 걸 드리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더 좋은 트레이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런 회원은 처음이란다. 물론 트레이너 쌤에게 내가 조금 독특한 회원으로 느껴진다고 해서 나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쌤의 답장은 트레이너의 회원 관리 차원 멘트일 수도 있고, 그 당시 20대였던 쌤에겐 낯선 스타일의 회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엔 누구나 열심히 할 수 있다. 시작한 이상, 어디를 끝으로 볼 것이냐... 언제까지 할 것이냐.. 가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리만 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1대 1 트레이닝은 3개월 만에 허리를 낫게 했고, 그 이후 100회까지만 해 보자 맘먹고 이어지던 PT는 매주 금요일 8시 수업으로 고정되어 1주일에 1번씩 나의 일상을 지탱해주고 있다. 그게 벌써 4년째라니 가끔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을 때가 있다.


처음에만 반짝 열심히 하고 금방 시들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평소 내 생각은 근력운동을 시작하면서도 적용됐다. PT를 받으며 근력 운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허리만 낫고 내 몸이 조금 튼튼해진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그 길의 끝은 나도 알 수 없었다. 


우선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금씩 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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