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나도 새벽 운동으로 시작했었지...
"새벽 수영을 하고 왔더니 넘 피곤하네요... "
옆옆 팀장이 반쯤 감긴 눈으로 비어있는 옆 팀장 자리를 지나 내 자리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운동해야지, 운동해야지 말로만 하더니 드디어 무언가를 시작했구나 싶었다. 수영이든 어떤 종목이든 운동 언저리 무언가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싶다. 너무 잘하셨다며 응원의 기운을 담아 긍정의 멘트를 날렸다.
대화는 딱 요기까지가 좋다. 언제 그랬냐 싶게 긍정의 단어들은 온데간데없고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을 땐 팩폭을 날리기보단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대화를 종료해야 한다. 안 그랬다간 부정이 부정을 불러와 걷잡을 수 없이 원치도 않은 대화를 이어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 그렇죠. 새벽 운동이 은근 피곤하더라고요. "
피곤이라는 단어로 부정의 기운을 적당히 퉁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나의 과거 속 한 장면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맞다. 나도 새벽 운동으로 시작했었지... 지금 4년째 하고 있는 근력 운동말이다.
4년 전 동네 헬스장을 방문해서 1대 1 PT를 받아보겠다고 계약서를 쓰려던 참이었다.
한창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에 빠져있던 때라 운동을 새벽 루틴으로 넣고 싶었다. 혹시 아침 5시 30분에 PT를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가능하다고 한건 대표쌤이었고, 수업을 해 주기로 한건 다른 트레이너 쌤이었지만 어쨌든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4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단순히 회원 1명 받기 위해 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트레이너쌤에게 어떻게 오픈도 안 한 시간이었는데 새벽 수업을 해 주실 생각을 했었냐고 물었다. 쌤은 잠시 생각하더니 궁금했다고 했다. 요가를 13년 동안이나 해서 유연성은 많지만 몸의 안정성이 떨어져 허리를 다쳐온 회원이 근력운동으로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 당시 트레이너 쌤이 '새벽 수업은 불가능합니다.'라고 했었다면.. 아니 헬스장 대표쌤이 '우리 영업장은 9시부터 오픈이니 새벽 운동이나 수업은 안 됩니다.'라고 했었다면...
과연 내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4년 동안 근력 운동에 빠져 헬스장 언저리를 돌고 있는 나는 대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종목으로 몸의 힘을 만들고 있을까.. 아 물론 꼭 헬스장이 아니었더라도 뭐라도 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처럼 근육으로 똘똘 뭉쳐 먹어도 잘 찌지 않고 넘어져도 잘 부러지지 않는 몸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4년 전 내 몸과 지금의 몸을 비교하자면, 한마디로 난 거듭났다.
모든 운동 종목의 기초가 된다고 느껴질 만큼 수학 정석 같은 근력운동... 이 이상의 운동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물론 언제든지 앞으로도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 요가만 13년 해 왔던 것처럼 '이것이 또 나의 인생 종목이네' 하면서 빠져버릴지 모르지만.. 왠지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 해도 해도 할 동작들이 많고 내 몸의 변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만드는 헬스보다 더 재밌는 종목을 못 찾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찾지 말고 안 찾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안 하는 것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요즘 곱씹으며 사는 중인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선택했으니 집중하며 몰입하고 싶다. 선택과 집중한 후 몰입했을 때만 느껴지는 충만감에 벅차기까지 하다.
새벽 운동으로 시작했던 헬스 PT 수업은 낮에 잠이 온다는 이유로 얼마 안 가 퇴근 후 시간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 당시 내가 새벽에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안 된다며 거절을 당했다면 지금 내 모습은 없는 거라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번 주 금요일 PT쌤을 만나면 그때 새벽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