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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불금은 헬스장에서

by 서가앤필

1.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헬스장에서 PT를 받는다. 4년된 루틴이다. 4년 전 헬스장에서 처음 근력 운동을 시작했을때는 일주일에 2번 PT를 받았다. 개인 운동은 별도로 다른 요일에 했다. 요즘엔 일주일에 1번으로 줄이고 개인 운동 시간을 늘리고 있다.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할 때는 주로 배운걸 복습한다. 트레이너와 함께 했던 동작을 연습하기도 하고 그날 쑤시고 불편한 몸을 움직여주기도 한다. 왜 아직까지 PT를 받으세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는데 질문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긴 답변이 되기도 하고 의외로 단답형의 간단한 답변이 되기도 한다.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2.

하루는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선택한 하루들이 모여 일주일이 된다. 개인 영역에서는 전형적인 P인 내가 주 5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J의 장점을 차용하기였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루틴 만들기다. P의 유연한 삶을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과 합을 이루어가야 하는 사회생활에서는 자칫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다. 계획적인 사람인 것처럼 흉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루틴을 만들어 공식 일정처럼 셋팅해 놓는 것이다. 어쩌면 그날그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라고 했다. 탁월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반복하다 보면 탁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탁월함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9시에서 6시까지 근무가 워낙 변화 무쌍했기 때문에 최대한 고정 셋팅값이 필요했다. 그래야 차분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3.

<여자는 체력>에서 최근 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한 수지 이야기가 나온다. 수지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택해야 하는 질문들이 담겨있는데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아침 자명종 소리에 눈이 떠졌다. 저녁에 회의가 있어서 운동할 시간이 아침밖에 없는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 피곤하니까 좀 더 잘까?


- 아침에 운동을 심하게 하면 종일 힘들 텐데, 운동을 얼마나 할까?


- 피트니스 재등록할 때가 됐네. 지금 하는 운동을 계속 할까, 다른 곳을 알아볼까?


- 출근 전이라 바쁜데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을까? 시간이 조금 걸려도 건강 식단대로 차려 먹을까? 아예 먹지 말까?


- 걷기 편한 신발을 신을까, 회의가 있으니 구두를 신을까? 구두를 들고 가서 회의 때만 신을까?


- 회사 갈 때 한 정거장 앞에 내려서 10분이라도 걸을까, 그냥 회사 앞까지 갈까?


- 점심은 뭘 먹을까?


- 회사 동료들과 카페에 왔는데, 뭘 마실까? 디저트를 먹을까 말까?


-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할까? 5분이라도 산책을 할까?


- 단 게 당기니까 과자를 먹을까?


- 과자 대신 먹을 견과류를 주문할까?


- 저녁에 김밥 먹으면서 회의를 하자고 한다. 마요네즈가 걸리지만 참치라는 단백질이 있는 참치김밥을 먹을까?


- 회의가 끝나니 밤 9시가 넘었다.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 저녁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배보프네. 뭐라도 먹고 잘까, 그냥 잘까?


-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을 마셔 버릴까?


- 자기 전에 휴대전화나 TV 좀 볼까? 그 전에 내일 아침에 바로 먹을 수 있게 샐러드를 만들어 놓을까?



오늘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택들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걸까?



4.

루틴은 머리 쓰는 일을 줄여준다. 매일 해야하는 수십가지 선택 중 몇 가지만 미리 셋팅해놔도 여유가 생긴다. 직장인인데 여러가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바빠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미 습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이 해야하는 일이 되어 루틴이 되었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엔 PT 수업을 받는다. 매주 일정한 루틴이다. 매일매일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에 요일별로 루틴을 만들어놓으면 일상이 정돈된다. 일주일에 1번 받는 트레이닝은 이제 내게 점진적 과부하 시간이다. 점진적 과부하란, 우리 몸은 금방 적응하는 성질이 있어서 초과 자극을 주어야만 성장한다는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한 무게나 횟수로 근육을 자극해야 한다는 트레이닝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점진적 과부하를 내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 삼기로 했다. 주 1회 금요일 저녁 PT 시간은 나를 여러가지로 잘 되게 해 주었다. 내 몸을 잡아주고, 일상을 잡아주고, 삶을 잡아주었다.



*관련책 - <여자는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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